#밀란 쿤데라 #진짜 진보 가짜 진보
키치(Kitsch)란 주로 예술, 디자인, 문화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일반적으로 저속하고 저급한 예술, 대량판매용으로 복제되거나 기존의 작품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모조품, 또는 저질스러운 속성을 가진 예술, 문화적 상품을 통칭한다. B급을 당당히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A급인 것처럼 포장하는 예술이다.
과도하게 감상적이거나 인위적인 감정을 유발하려 한다. 그런데 키치라는 개념은 사회, 정치적 현상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체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단순화하고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여 선전, 선동에 매진하는 것도 키치의 한 예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 이를 표현했다. 다음의 대목을 감상해보자.
“첫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 인류와 함께 감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번째 눈물이 바로 키치의 전형이다. 쿤데라는 키치를 ‘감동의 표면적인 형태’로 보고, 그것이 감정의 진정성과 깊이를 훼손한다고 본다. 한 마디로 인간 존재의 복잡성에 대한 얕은 해석이다.
키치는 결국 순수한 미적인 감동이나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보편적인 감동을 추구하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순수한 감동이 당연히 느껴야 할 감동으로 변질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주 맞닥드리는 PC 주의와 감성 팔이의 심리적 기저다.
사람들이 키치에 쉽게 빠지게 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부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것은 모두가 좋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 쉽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라는 이상과 강박에 빠져 복잡성(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단순하여 진정한 인간의 감정이나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밀란 쿤데라는 ‘공포 정치가 두려운 게 아니라 공포 정치가 진행하는 서정화 작업이 더 무섭다’는 말을 남겼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도 나온다. 즉 그가 말한 키치는 단순히 미학적 개념을 넘어선 진지한 철학적 고찰이다. 세상의 복잡성과 인간 존재의 진지함을 무시하고, 이를 단순화하여 감상적이고 도덕적인 형태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현실을 아름답고 완벽한 환상으로 대신하려는 사람의 욕구가 어떻게 사회적,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 투영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 삶의 진정성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 하더라도 집단 수준으로 발전하여 모두가 이를 공감하고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이자 파시즘일 뿐이다. 이것이 진보 집착적 사고의 본질이다. 정치적 관점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인간 존재의 전반적인 현실을 협소하게 바라보게 된다.
정치는 삶의 일부일 뿐, 생존이나 감정적 충만함과 같은 근본적 필요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특정 이념에 빠지는 것은 '무지'일 뿐이다.
도서 <진짜 진보 가짜 진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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