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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모 Sep 27. 2024

밀라노 교환학생 더 하지, 왜 일찍 돌아왔어?

에 대한 긴 답변

마음이 무지하게 복잡하다.

단순하게 사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단순한 회로에서 오는 오점이 두려워 차라리 무한한 물음표 사이로 숨어버린다. 내가 모든 걸 책임질 필요도 없고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이 낳았을 더 나은 결과가 자꾸 눈에 밟힌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니 더 집착하게 된다. 집착이 집착을 낳는다. 내가 후회만은 하기 싫다는 마음에서 집착이 파생된다. 내가 행복하기만 할 수 있다면? 으로 질문을 바꿔본다.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 난 어디서든 사소한 행복의 구석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처음 밀라노에 왔을 때의 그 두려움이 문득 떠오른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두려움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그때 그 공항에서의 나는 많이 떨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여간, 외로움과 낯섦에 마음이 많이 닳았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인연들을 만나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들을 쌓아갔다. 그러다 이곳에서도 인생을 마주한다. 꿈 같던 순간들, 마치 어린 시절 같이 반짝거리지만 결국 멀어지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지나갔다. 그 자리에 현실이 남았다. 현실 감각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타지에서의 그 현실 감각은 날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 공허함은 아무것도 몰랐던 첫 외로움과는 또 달라서 새로운 이질감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다 더 쉬운 방법을 알아냈다, 마치 살기 위해서 홀리듯 생각이 뻗어나갔다. 그 생각이 결국 그곳에 멎을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한사코 그 느낌을 부정하며 이성적인 척 선택을 했다. 난 계산에 약한 건지 아니면 감정에 휩쓸인 선택을 하는 건지 돌이켜보먼 내가 놓친 구석들도 꽤 있단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그 구석들까지 쓸어담은 사람들에 질투가 났다. 그치만 난 다른 걸, 난 달라. 다른 내가 내린 최선. 그게 날 행복하게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야, 난 어디로 가는지 몰라, 다음 한 발짝을 어디 내딛을지밖에 나는 몰라, 그걸로 충분한 건데

그러다 내가 도망친 곳은 준비되지 않은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꿈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면서 날 알아가는 인생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내 꿈으로 삼는다.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꿈이 사라지기 전에, 과거의 현실이 날 데려가기 전에 잠깐 꿈처럼 맛본 이 순간들이 내 인생이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현실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꿈을 꾸고 간절하게 목표를 세운다. 내가 사랑을 배웠던 그 순간들, 내가 숨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웠던 순간들에 감사하면서 내 인생의 방향키를 완전히 틀어버린다. 그리고 내 인생 잠깐 1년, 즐거웠던 기억으로만 남길 것이라면 원래 계획대로 졸업 조금 늦추면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게 달라졌고, 더 선명해졌다. 난 이 경험이 1년이 아니라 나의 10년, 20년이 되기를 원한다. 이것들이 현실이 되기를 원한다. 잠깐 머무는 교환의 인생이 아니라 이것들이 모두 내 인생 그 자체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잠깐 작별을 고한다. 아주 잠깐, 그리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와 같을지 모르지만 그때 그랬듯이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만남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이번 이 한 걸음을 한국으로 돌린다.


이제 원하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삶의 의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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