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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생활] 1시간 거리 네덜란드 놀러 가기

쾨켄호프 튤립축제는 핑계였을 뿐...

by 꼬모

4월 10일 "에어비앤비 무사 도착"

IMG-20250517-WA0008.jpg 이지젯을 타고 런던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늦은 저녁에 암스테르담 공항 도착! 조금 빨리 가서 40분 정도밖에 안 걸린 것 같다. 공항은 정말 넓고 깨끗해서 첫인상이 좋았다. 거기에 런던과 달리 쾌적하고 조용한 지하철까지! 암스테르담은 나를 두 팔 벌려 반겨주었다.

WhatsApp 이미지 2025-05-17, 16.30.21_74ed48a3.jpg 깨끗하고 조용한 지하철에서 마음의 평안 찾기

이번 에어비앤비는 2번의 실패 끝에 겨우 구한 곳이었는데.. (에어비앤비에서 숙소 잡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호스트와 화장실, 부엌은 같이 사용하고 방은 따로 쓰는 식이었다. 늦은 밤에 도착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도 잠시, 앱에 올라온 사진과 똑같은 집 내부 모습에 놀랐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구석구석과 욕조에 있던 화분들과 10통씩은 넘게 있던 샴푸와 바디워시들. (에어비앤비를 얼마나 오래 하시려고..)

IMG-20250517-WA0005.jpg 다음 날 아침에 찍은 에어비앤비 내부: 초록초록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보름달이 아주 크게 떠 있길래 사진도 조금 찍고 이날은 바로 씻고 잤다!


4월 11일 "알고 보니 문 앞이 로컬 시장"

이번 네덜란드 여행에서는 절대 시간이 쫓기는 일 없이 여유로운 콘셉트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느지막이 10시쯤 일어났다. 문 앞을 나와보니 웬걸! 로컬 시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나와 M은 원래 가기로 한 샌드위치 가게는 차치하고,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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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토스트 집에서 우선 사과와 땅콩버터 토스트를 먹었는데 맛은 음~ 난 신선하고 물기 있는 샐러드와 과일이 당기는 맛이었다. 우선 그렇게 굶주리는 배를 채우고 나는 닭다리를 사러 갔다. '제발 맛있어라' 빌면서 한 입 먹었는데 안은 촉촉하고 아주 적당히 간이 배어 껍질은 짭조름한 것이 아주 별미였다. 그 사이에 M은 줄이 길게 서 있는 와플집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와플이 유명한 줄 몰랐는데 줄이 긴 걸 보니 꼭 먹어야겠다, 싶었다. 난 닭다리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바로 달달하고 바삭한 와플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도우가 아주 얇아 바삭거리는 와중에 달콤한 캐러멜과 초콜릿이 녹아내렸다. 완벽한 길티 플레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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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시장을 좀 더 둘러보았다. 아시안 음식도 꽤 있었고, 한국 주먹밥도 있었다! 처음엔 말을 못 걸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물어보니 암스테르담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국과 아시안 학생들이 하는 부스였다. 난 배가 불러 먹진 못했지만 대학생들이 로컬 시장에서 음식을 팔아보는 경험도 참 유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대학교 축제 때 부스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위치 선정과 손님 수 예상을 잘못하는 바람에 처참히 망한 경험이...) 맛있어 보이는 것들이 정말 많아 배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잠시 숙소에 들렸다. 숙소에서 미리 저녁에 탈 운하 보트를 예약해 두었다. 혼자 왔다면 딱히 탔을 것 같진 않은데, M이 타보자 했던 것 같다. 이래서 누군가와 같이 하는 여행이 새로운 경험,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늦기 전에 서둘러 해양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나였다면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곳인데 M 덕분에 가보게 되었다. 가는 길에 나뭇잎에 무수히 깨져버리는 햇빛과 바삐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들이 참 평화로워 보여 영상을 찍었다. 도시 풍경을 만드는 건 결국 날씨와 사람들이다. 햇빛이 적당히 따사로운 봄에 가서 내 기억 속 암스테르담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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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박물관은 큰 관 하나가 있는 구조는 아니었고, 작은 관이 방마다 있는 구조였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가 어떻게 항구 도시가 되었는지부터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거대한 권력을 거의 모든 그림과 모형에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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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남기려고 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역사에 남고자 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선박 기술, 항해 기술이 당시 세계 경제 대국이 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연신 감탄했다. 작은 전시들도 있었는데 모두 작지만 알찬 전시들이었다. 어린이 전시까지 다 살피고 나오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서둘러서 건물 바깥에 있는 실제 배 모형 전시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당시 뱃사람들이 어떻게 자고, 볼일을 보고, 음식을 먹는지 상상하면서 돌아다니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머무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난 만족했다! M은 조금 아쉬웠다고 했지만 내가 멋있는 사진을 많이 찍어줬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운하 보트를 타기 위해 다시 이동했다.


난 여행할 때 30분 거리 내외는 걸으려 하는 편인데 특히 날이 좋은 날은 노천카페에 나와있는 현지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걷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가는 길에 배가 좀 고파서 눈에 보이는 감자튀김 집에 들어가서 하나 시켜 먹었다.

IMG-20250517-WA0016.jpg 나는 많이 느끼해서 많이 못 먹었다.

어떤 소스랑 먹는지가 포인트인데 난 마요네즈랑은 너무 느끼해서 못 먹겠던데 M은 잘만 먹더군! 감자튀김 먹느라 길 찾느라 바삐 걸어가니 선착장이 나왔다. 우리가 예약한 보트에서 잠시 기다리면서 난 M에게 '널 지금의 너로 만든 계기가 뭐야?'라는 질문을 했다. (사실 걸어올 때부터 하긴 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순간들, 사람들. 우린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앞으로 우리가 지금껏 하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난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생각 주머니가 넓어지는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8할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8할이길 바란다. 보트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번갈아가며 1시간 반 정도 여기로 저기로 우릴 데려다줬다. 조밀하게 서로에게 붙어있는 집들과 그 와중에 개성을 뽐내는 지붕들이 기억에 난다. 사실 영어 안내 방송을 많이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많이 걸어 약간은 피곤한 발을 쉬게 하고, 나란히 앉아 M과 대화하는 건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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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는 팬케이크 집에 갔다. 네덜란드에서 팬케이크가 유명하다는데 난 50%의 정보만 알았다는 걸 그 다음날 알았다. 네덜란드식 팬케이크가 따로 있다는데 우리가 간 곳은 좀 평범한 팬케이크집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때! '꼭 가봐야 할 곳' 강박에서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다. 여행은 사실 계획에서 틀어지는 게 더 재밌는 법. 결국 내가 느끼는 온도와 기억의 개념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M은 얇은 누텔라 바나나 팬케이크를 시키고, 난 오믈렛을 시켰다. 배불러서 M에게 오믈렛 반을 먹으라 해두고는 내가 야금야금 거의 다 먹어버려 배가 무진장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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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과일을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블루베리를 사러 슈퍼마트로 걸어갔다. 석양에 물든 하늘과 그 못지않게 아름다움을 뽐내는 튤립들이 조용히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블루베리, 물 한 병,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Tony's Chocolonely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도저히 블루베리를 먹을 수가 없어 (배부름 이슈) 다음 날 먹기로 했다. 우린 대화를 조금 하다가 잠에 들었다.


4월 12일 "네덜란드에 온 명분, 쾨켄호프 튤립축제"

오기 전부터 미리 쾨켄호프 튤립축제 입장료와 Amsterdam ROI에서 출발/도착하는 왕복 버스권을 끊어두었다. 난 아침부터 블루베리를 씻어 락앤락에 담은 후 잘츠부르크에서 산 파란색 에코백에 넣어 트램을 타러 갔다. Amsterdam ROI에 가니 이미 긴 줄이 있었다. 11시로 예매했던 것 같은데 시간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온 사람 먼저 버스에 태워 보내는 식이었다. 우린 앉아서 가려고 한 텀 더 기다렸는데 우리가 타보니 자리가 없어 결국 1시간 정도 서서 가야 했다. 그래도 그 전날 많이 걷지는 않아서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블루베리가 무거워 M에게 들어달라고 한 것 빼고는.


튤립축제에서 친구 C를 미리 만나기로 했다. C는 이미 작게 한 바퀴를 돌고 온 상태였는데 그날 새벽에 런던에서 출발해서 아침 비행기를 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강철체력의 소유자였다. 나였으면 10초에 한 번씩 하품을 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특히 노인분들이 꽤나 계셔서 마치 엄청 고급스러운 요양원 정원 같은 느낌도 받았다. (C가 이 말을 듣고 기겁하던데 사실에 근거한 비유일 뿐이다..ㅎㅎ) 내가 늙어서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정원이 그 정도라면 아주 만족할 것 같다. 예상을 했지만, 난 그렇게 모든 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정원에서 큰 감동을 받진 못했다. 오히려 암스테르담 길가에서 군데군데 보이는 튤립들이 더 아름다웠다. 자연에서도 난 꾸꾸꾸 말고 꾸안꾸.. 그래도 형형색색의 다양한 튤립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만, 한 번으로 족한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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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튤립에 서로 다른 이름이 붙여져 있어서 우린 '튤립 작명'을 해야 했던 직원을 상상했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데 앞에 바나나가 보인다? 그럼 Banana ice cream으로 짓는 식이다. 멋있는 이름들도 많았는데 뜬금없는 이름들도 꽤 있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얘기를 하다 보니 금세 한 바퀴를 돌았던 것 같다. 나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진 않아서 우린 그 정도면 됐다, 싶어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M과 팟캐스트를 들었다. 언어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그렇지만 하나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커다란 세상 하나를 더 얻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는 Mannekenpis라고 엄청 유명하다는 감자튀김 집에 갔다. 줄은 얼마 안 섰고, M은 어니언 소스, 난 스위트 칠리소스를 선택해 먹었는데 어니언 소스가 훨씬 맛있었다. (이런!) 잠시 광장에 앉아서 정신없이 먹었다. 내가 감자튀김을 좋아하진 않는데 감자가 크고 소스가 맛있으니 참 맛있었다.


그리곤 시가지에서 기념품샵을 여기저기 들리면서 구경을 했다. 내 기념품도 하나 샀다! 이후에 네이버 카페 어딘가에서 누군가 추천해 둔 피자집에 갔는데 마르게리따 맛이 인정! 맛있었다. 그런데 M이 너무 목말라해서 탭 워터를 달라고 했는데 큰 병을 주지 않고 작은 물컵에 줘서 몇 번이나 다시 부탁해야 했다. 피자의 맛은 도우가 좌지우지하는데 (누가 들으면 피자 전문가인 줄) 도우가 맛있으면 난 끄트머리를 남긴 후 마지막에 올리브유에 찍어먹는다. 이탈리아 식당에는 보통 올리브유가 미리 식탁에 올려져 있는데 이 식당에선 부탁을 했더니 바로 가져다주었다.

IMG-20250517-WA0021.jpg 그래도 그간 먹은 마르게리따 중에선 최고였다

그렇게 아주 배~부~르~게 먹은 후 운하 주변을 산책했다. 엄청 큰 중식당이 있었는데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다. M은 내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찍어주었다. (Maybe from China?) 그리고 난 그날도 블루베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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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와 튤립이 거리의 주인공인 듯

숙소에 조금 있다가 우린 홍등가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궁금해서 한번 슬쩍 갔다 오기로 한 건데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 ㄴㅇㄱ 난 홍등가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갔는데 그렇게 유리 벽 뒤에 사람들이 스스로를 '전시'하고 상품화하는 모습이 보기에 정말 불편했다. 특히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스크롤하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이고 거기에 동의하냐 안 하냐를 넘어서 내겐 너무 새로운 세계였다. 조금 걷다 보니 정말이지 속이 안 좋아져서 그만 가려고 오른쪽 골목으로 틀었는데 거기에도 유리 벽이 즐비했다. '성'이라는 것이 상품화될 수 있는가? '성'의 개념이 무엇이지?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그 빨간 세상에서 난 빠져나왔다.


4월 13일 "국립 박물관과 핑크 양말"

M이 선택한 것이 해양 박물관이었다면 난 국립 박물관을 선택했다. 보통 유럽 여행할 때 학생이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무료이거나 엄청 저렴했는데 암스테르담은 딱히 저렴한 느낌은 아니었다. 대개 대학생이 아니라 성인 기준으로 티켓을 사야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박물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버드나무와 강가가 참 아름다워 영상으로 담아두었다. 길가 어디를 걷든 아름다웠다. 봄이어서 그랬을까? 블루베리를 톡톡 씹으면서 걷는 암스테르담의 아침이란.. 달콤하고 상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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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암스테르담의 아침

박물관에 거의 도착해서는 비발디 사계를 연주하는 아코디언 연주자를 보았다. M은 '겨울'이라면서 연주자의 실력에 연신 감탄하며 영상을 찍었다. 나도 아코디언으로 사계처럼 정교하고 강렬한 음악을 정확히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잠시 넋을 놓고 봤다. 연주가 끝나고 해리포터 사운드 트랙을 연주할 때쯤 우리는 박물관 입장 줄에 합류했다. 생각보다 길이 줄었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얘기를 하다 보니 금세 줄이 줄었고 가방 검사를 한 후 들어갈 수 있었다. M의 가방은 커서 안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다행히도 Cloakroom에 맡길 수 있었다. 박물관은 반 고흐를 포함한 네덜란드 인상주의 화가들부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역사까지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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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일본과 교역을 한 유일한 서양 국가였고, 그 이유는 유일하게 종교 전도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교역을 통해 부자가 된 네덜란드 부르주아들은 영국의 귀족 문화를 따라 하기 시작한 점이 흥미로웠는데, 그렇게 돈이 많음에도 문화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농노 출신의 부자들이 스스로가 부자임을 드러내는 사소한 방식 하나하나가 결국 귀족 문화인 것이다. 돈이 많아지면 권력을 원하고, 그 권력은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 가는.. 누군가는 우월하고 누군가는 천하다는 인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그런 문화.


난 M과 같이 또 따로 보면서 궁금한 점들을 챗 지피티에 물어보고 그걸 M에게 말해주는 그 시간이 참 즐거웠다. AI가 있으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즐기는 차원이 달라짐을 느꼈다. 훨씬 유익하고 재밌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지루하다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꼭 보고 싶었던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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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처음 소개받은 그 예술가는 일상의 고요함과 따뜻함을 화폭에 옮기는 데에 탁월했다. 예술가의 선택을 받은 순간은 그 자체로 특별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나의 평범한 일상에, 너의 반복되는 나날에 있는 순간들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난 네덜란드에 와서 '네덜란드식' 음식을 먹은 거라곤 감자튀김뿐인 것 같아 마지막을 네덜란드 전통 요리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곳이고, M이 그동안 밥을 많이 샀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겠다 했다. 세트 메뉴로 시켰는데 애피타이저가 염소 치즈 튀김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치즈도 유명하다던데 치즈 가게를 잠시 들른 것 빼곤 한 게 없어서 아쉬웠던 찰나에 작은 튀김 3개가 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음식이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나름 네덜란드 요리를 체험할 수 있어 마지막 식사로 적당했던 것 같다. 몰랐는데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나자 가게 밖에 줄이 생기기 시작해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M은 음식이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과 매우 비슷하다고 했다. 사실 유럽 요리들은 거의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오븐을 많이 사용하는데, 볼 때마다 한식보다는 훨씬 쉽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료 다 때려 넣고,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도 나중에 집에 오븐을 두어 뚝딱뚝딱 요리해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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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밤에 M에게 핑크색 튤립 양말을 선물해 주었는데 진심 반 놀리는 마음 반이었다. 점심을 먹고 내가 결제하면서 I like your pink socks라고 했더니, 누가 들으면 emasculating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맥락 설명이 조금 필요한데, 여자가 밥을 사면서 너의 핑크 양말이 예쁘다고 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약간 남성성을 뺏긴 기분이랄까? 만약 그런 식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남자랑은 데이트도 안 하겠지만, 그 입장도 이해가 되긴 했다. 사실 이 질문은 오랫동안 해오던 것인데 '데이트를 할 때 남자가 밥을 사야 하는가?'이다. 남자가 그럴 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내가 남자가 되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럼으로써 본인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달까? 또는 본인의 쓸모를 보여줘야 한달까? 남녀가 관계에서 서로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은 어쨌든 무척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여성이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지금처럼 가지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혼란을 겪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이 혼란 속에서 자유를 찾으리!


WhatsApp 이미지 2025-05-17, 16.43.50_b7568e85.jpg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거리에!

마지막으로 C와 C의 친구를 만나 카페로 향했다. 나라별 평균 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네덜란드가 가장 크다.) 난 창문 밖 풍경을 영상으로 찍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내가 찍고 싶은 풍경이었다. 자전거가 가장 흔한 교통수단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동'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어떨까? 거리에 대한 감각이 아예 다를 것 같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살 때 나는 대중교통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한 후 환승이 없으면 쉬운 길, 또 역에서 가까우면 갈 만한 길이라 생각한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역에서 얼마나 가까운지는 생각도 안 할 것이다. 이동에 있어서 더 자유로울 것이다. 대중교통과 다르게 자전거는 더 빠른 나의 '발'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에 고작 2박 머물면서 참 살기 좋은 도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떠나면서

혼자도 여행을 해보고, 여럿이 여행도 해보면서 느낀 것은, 여행은 같이 가는 사람과 풍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지, 다음으로 어디를 갈 것이며 무엇을 먹을 것인지, 끊임없이 의견을 조율하고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여정이 여행이다. 아무리 여행 고수라도 누군가와 같이 가면 다시 초보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도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가 아니라, '누구와'이다. 여행은 삶의 단편만을 편집해서 보여주지만, 우린 여행을 통해 사람을 배우고,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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