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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를 손에 든 사람들

중앙의 언어와 변방의 언어

by 백재민 작가

그로부터 며칠 뒤, 동료위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것은 아니고 자신이 '지방정치위원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직책이 지닌 정치적 무게를 가늠하기에, 나는 아직 정당이라는 조직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파악한 조직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정의당이라는 모항성(태양)을 중심으로 청년정의당이라는 행성(지구)이 궤도를 돌고, 각지역 위원장들은 그 행성을 따르는 위성(달)들이다. 그중 일부 위성은 행성가까이 초대되어 '상임특별위원회'라는 이름 아래 결집한다. 연락주신 동료위원장께선 ‘지방정치’ 분야를 맡았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특별위원회 이긴했으나,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행성의 노선에 적극동조할 수 있는 입장을 가진 동료위원장들께서 여러 기회와 자원을 배분받는 구조였다. 그렇다고해서 불만은 없었다. 초짜활동가인 나는 초대받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변방은 변방임이 확인된 셈이다.


포항의 해변가는 내가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서있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알려주는 곳이다. 연락주신 동료위원장과 대면한 날, 그는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커피를 담아달라 부탁했다.


요즘 기후변화다, 기후위기다하는 경각심으로 일회용품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체감하기로, 텀블러 사용은 페미니즘진영, 퀴어퍼레이드와 같은 진보적공간을 활동무대로 삼아온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또한 텀블러사용은 어떤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았는지 구분되는 일종의 신분증과도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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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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