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둘, 꿈과 현실사이에서
사람들은 종종 '정치'를 한다고 하면, 무언가 거창한연설과 경제적인 여유를 떠올리는 듯했다. 서민과 괴리된 귀족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넉넉한 후원금이 있고, 근사한 명패와 책상이 놓인 사무실에 앉아, 고고한 담론을 나누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소한 스물둘의 나에게, '진보정당소속 청년정치인'이라는 이름은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정당활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달리 아주 고단하고, 돈이 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사상검증을 요구받는 날의 연속이었다.
활동 중에 잠시 쉬어가려고 잠수를 탄적이 있었더랬다.
휴대폰 전원을 켜놔도 한동안 울리지 않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할머니'였다.
니, 팔공산 단풍봤나? 끝내주더라
얼마 전, 부모와 연을끊고 지내던 아버지가 할머니와 극적으로 화해하고 함께 팔공산에 다녀왔다는 소식이었다. 이십년 가까이 이어지던 불화가 단풍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해소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얼마안가 또 갈라섰지만 말이다..;;). 한참동안 그날의 풍경을 신나게 늘어놓던 할머니가, 마치 큰비밀이라도 털어놓듯 목소리를 낮추며 대뜸 화제를 바꿨다.
내가 이번에는... 심상정 찍었다
설날. 친지들이 모인 자리, 나는 '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적혀진 명함을 돌렸다. 그 명함을 받아든 큰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명함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친지 중 한둘이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가족끼리 절대해선 안 된다는 정치토론, 아니 '전쟁'이 벌어졌다.
대학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큰아버지는 변화의 필요를 강조하며 이재명을 지지했다. 반면, 기술배워 포스코포항제철소에서 평생을 바친 할아버지는 카리스마있는 지도자를 원하며 윤석열을 지지했다. 그런 할아버지를 평생 내조해 온 할머니 역시 당연히 윤석열을 지지했다. 그 격렬한 전장 한가운데서,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양심상 내가봐도 헛발질 투성이던 '나의후보'를 찍어달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을 뿐더러, 내 말이 그들의 해묵은 세월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없었다. 나는 그저 교회구석에 앉은 이주노동자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때 할머니는 빨래를 개는 척하며 이재명 욕을 한참이나 이어갔다. 그러자 큰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여 "윤석열이 찍는거는, 자식새끼 등에 비수 꽂는 거나 마찬가집니더"라는 가시돋친 말을 내뱉었다. 늘 나긋나긋하고 젠틀했던 큰아버지가 부모에게 그런 독한말을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가족의 정'마저 시험대에 오르는건 우리집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그날의 '비수' 같은 말이 할머니마음에 깊이 가닿았나보다.
때마침 철부지 손주녀석이 정의당에서 활동한다하니, 할머니는 생애처음으로 평생의 신념과 지역색을 접어두고 '심상정'을 찍었다. 할머니가 내게전화를 건 이유는, 자식새끼에게 느낀 서운함과 동시에 '나는 너의 편이다'라는 애정섞인 생색을 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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