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누굴위한 생명존중인가

목사 직함의 권위로 생명을 옹호하려면 뭐 먼저 이야기해야되나

by 백재민 작가
(사진)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7명 전원이 위헌의견을 냈다. 단순위헌 4명, 헌법불합치 3명. 어쨌든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게 요지였다.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고쳐라. 헌재의 주문이었다. 국회는 기한을 넘겼다. 낙태죄는 법적 공백상태로 남았다. 지금도 그렇다.


광화문에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 "생명을 지키자"고 외쳤다. 태아도 생명이고 낙태는 살인이라는 논리였다. 교회마다 반낙태 서명을 받았다.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설교를 이어갔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인간이 함부로 빼앗을 수 없다. 태아도 엄연한 생명이므로 낙태는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일관된 윤리같았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그들이 말하는 '생명'의 범위가 묘하게 제한적이었다.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얘기를 좀 해보자. 이들은 낙태반대운동의 선봉이다. 2022년 웨이드 판결이 뒤집혔을 때 환호했다. 50년간 싸워서 이겼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이 사람들, 총기규제에는 반대한다. 미국에서 총기 사망자가 연간 4만 명이 넘는데도. 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도, 쇼핑몰에서 무차별 총격이 벌어져도 총기소유는 헌법적 권리라고 우긴다. 전미총기협회(NRA)의 든든한 지지세력이 누구겠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다.


방위산업체는 총을 팔아야 먹고산다. 규제가 강화되면 매출이 줄어든다. 그래서 로비를 한다.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고 여론을 형성한다. 종교가 동원되는 건 이 과정에서다. "자유를 지키자", "자기 방어는 신이 주신 권리다." 교회에서 이런 말이 울려 퍼진다. 태아의 생명은 지켜야 하지만 이미 태어나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는 건 별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낙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피임 교육에는 손을 놓는다. 청소년들에게 순결을 강조한다. 결혼 전까지는 참아라.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정작 피임 방법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한다. 혹시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는다.


청소년 성교육이 없으니 피임에 실패한다. 원치 않는 임신이 생긴다. 교회는 혼전순결을 외치지만 현실의 청년들은 연애를 하고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피임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여성, 경제적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청년, 사회적 낙인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미혼모.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낳으면 입양 보내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10개월간 몸과 마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임신과 출산, 자신이 낳은 아이를 떼어 보내야 하는 고통을 단 한 줄로 정리한다. 생명을 존중한다면서 그 생명을 품고 있는 여성의 삶은 존중하지 않는다.


이게 원래 한국의 전통이었나. 아니다. 조선시대의서를 보면 낙태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유산을 유도하는 약재와 방법이 적혀 있다. 도덕적 비난보다는 의학적 지식으로 다뤘다. 낙태를 살인과 동일시하는 관념은 서구에서 들어왔다.


일제는 조선인여성의 출산을 통제했다.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었다. 동시에 자국민에게는 '산아제한 반대, 낙태금지'를 강요했다. 제국의 인구가 필요했으니까. 해방 후 이 법체계가 그대로 남았다. 미군정은 일제의 법률을 답습했다. 낙태죄도 그중 하나였다.

b82b7bf7f6799bbefcd0a2b9da935cbe.png 일본제국주의의 시작점이 된 메이지유신, 그 메이지 유신의 시작점이된 흑선내항

195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미국식 개신교가 깊숙이 들어왔다. 전쟁이후 구호물자와 함께 들어온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주의는 낙태를 명백한 죄로 규정했다. 가톨릭의 영향도 컸다. 신앙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특정종교의 교리가 모든 시민을 구속하는 자유는 인정할 수 없다.


낙태죄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53년이다. 형법제정과정에서 독일과 일본의 법을 참고했다. 당시 유럽은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던 시기였다. 인구를 늘려야 국가재건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국가가 필요하니까 여성은 낳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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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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