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대한 사유
함께 다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행적을 옮긴 친구들과 가끔 만나서 대화를 하게 되면 한가지 알게 되는것이 있다.그친구들은 내가(옷을 아무렇게나 입는 사람이) 봤을때 독특하고 개성있는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다는거다.한마디로 말하자면 ‘패셔너블하게’.
그 친구들은 수도권에 머물 때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대로 옷을 입는 반면에 지방에 내려와서는 그러지 못하는 듯 했다.지역에 따라 옷을 달리 입는다는 소리다.게중 어떤 녀석은 “수도권에선 한껏 꾸미고 다닐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사람들의 시선,평가,판단,편견등으로 인해 그러지 못한다”며 대놓고 불평하기도 한다.그 말에 나는 흠칫했지만,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왜 그말에 수긍했던 것일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긴긴 사유 끝에 내린 결론은 나 역시 그루밍하던 남성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들 입는 옷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옷을 즐겨입으려 했기 때문에 그랬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복고풍패션을 좋아했다.20세기의 정장패션 같은것들 말이다.잘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다소간 난해하거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는 패션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 착장 컨셉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이 패션은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남성의 평상복’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선 화이트칼라나,비즈니스맨들이 형식적인 예의를 갗추려할때 입는 옷으로 변화했다.
문제는 지방중소도시에서 눈에 튀고 개성 넘치는 패션을 구사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수도권은 온갖 다양성과 다채로운 문화가 몰려드는 곳이니 개인이 톡톡 튀는 개성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지만.인구가 빠져나가는 지방에는 자연스레 다양성과 다채로운 문화가 자리잡을 수 없게 되었다.따라서 지방중소도시는 개인의 개성과 ‘차이’가 자리잡지 못하는 삭막한 곳이 되어 버리는거다.
현재로서의 나는 수도권에서 살 수 없고 지방에만 눌러살아야 한다.그말은 즉 개성을 표현하고 다니는데 제약이 따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그렇다고 판단의 시선이 두려워서 나만의 스타일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수도권에서는 자신의 개성대로 꾸미고 다닐수 있지만 지방중소도시에선 ‘왜 그러지 못할까’에 대한 심층추론을 해본다면,(식상한 담론으로 추론을 이어가는 것이 신경쓰이긴 하지만)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의 부재가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자신의 개성대로 꾸미고 다닌다는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의복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색이 담긴 옷을 입는다는것이 아닌가.
자기개성대로 꾸미고 다닐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줄 아는 문화가 있다는 말아닐까?지역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한 문화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사람들은 ‘다르다’를 종종 ‘틀렸다’로 표현하기도 한다.말에서 사람들의 의식이 드러나는 법이라 생각하는 나로선 여기에서 그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방,특히 지방중소도시와 농어촌은 개인마다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며,정상범주를 문화적 합의로 정해놓고 그범주안에 들지 못하면 ‘비정상’,’틀려먹은 인간’으로 규정하는 다소간의 전체주의적인 문화가 깔려있는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