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저 잊고 묻어둘 뿐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감독 케네스 로너건 2016

by 김지우

사상누각,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모래 위에서 한번 무너진 누각이 다시 세워지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의 마음 또한 한번 무너지면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부르고 트라우마는 항상 우리를 바닥이 보이는 유리 다리 위로 내몬다. 영화의 주인공인 리는 무너지다 못해 사라진 모래를 긁어모아 누각을 올리려 하는 인물이다. 사실 자신도 누각이 다시 세워지지 못할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기에 서툴고 건조한 마음으로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형의 죽음 이후 조카인 패트릭의 거취 문제, 남아있는 배를 처리하는 문제, 사체 보관 문제, 리의 직장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슬픔과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리에게는 분명 가족을 잃은 거대한 사건이지만, 영화 속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은 지극히도 간단하고 짧다. 모든 순간이 그에게 생각하거나 슬퍼할 틈을 주지 않는다.


땅이 얼어 형의 사체를 잠시 냉동고에 보관하겠다는 말을 들은 패트릭은 그날 밤 냉동고에서 떨어진 고기들을 다시 집어넣으며 숨을 못 쉬는 고통을 느낀다.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영화 내내 눈물 한 방울, 슬퍼하는 기색 한번 없이 담담하던 패트릭이 처음으로 무너져 내린 순간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이 언젠가 불현듯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나타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패트릭과 리는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 겉으로 보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이 건조하지만, 사실은 녹이 슨 톱니바퀴처럼 멈추어버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돼버린 사람들이다. 영화의 후반부, 대부분의 일이 정리되고 리는 패트릭에게 찰스타운에 머무르겠다고 말하며 이곳에 있으면 못 버티겠다고 말한다. 이때 리는 못 버티겠다는 말을 두 번 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첫 번째 말에는 말 그대로 못 버티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두 번째 조금 더 강조하며 하는 말에는 ‘너도 이해할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세 번째 미안하다는 말에는 ‘못 버티겠어, 너도 이해할 거야’라는 말에 대한 사과라고 느껴진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겪게 된 아이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와 아버지가 묻힌 묘의 땅을 꾹꾹 눌러보는 패트릭의 모습이 보인다. 영화라는 매체가 주어야 하는 이야기에는 제한이 없지만 그 이야기가 끝까지 절망과 슬픔만을 준다면 관객을 너무나도 아프게 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식으로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거나 분위기를 환기해 주는 등 여러모로 노력하는 작품이 많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나뭇가지가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것으로 리와 패트릭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작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한줄 평 - 불현듯 떠오르는 고통에 너무 아파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