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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레퍼토리
그중에 내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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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사귀
Nov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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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도 니 생일만 되면 꼭 추워진다.
너 낳은 날 세상에나 진눈깨비 진눈깨비 그런 진눈깨비가 없었어.
바람은 또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문이 덜컹덜컹거리고 몹시도 추웠지.
살얼음이 얼어서 길도 미끄러울 정도였어.
아빠가 첫 아이라고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병원 가려고 택시를 잡아타러 나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휘청거리다가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
그때 아빠 나이가 34살이었으니 꽤나 늦은 나이에 첫 아이를 본거지.
아빠 친구
중에 초등학교 다니는 딸도 있었어.
그러니 니가 얼마나 소중하고 예뻤겠냐.
병원에서 퇴원 후 집에 왔는데 집이 너무 추운 거야.
네가 추워서 얼굴이 새파랗게 되니 안 되겠는지 아빠가 난로를 사서 방안에 놔두었지.
갓난아이가 하루에 오줌을 어찌나 많이 싸는지 기저귀를 그 추위에 공동 수도에 나가서 빠는데 엉덩이 밑으로 바람이 숭덩숭덩 들어오곤 했었지~
그땐 젊어서 그랬는지 추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널 키웠다.
사람들은 널 보고 못난이 못난이 누굴
닮아 이렇게 못난 거냐고 놀렸는데,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예쁘다고 아빠가 항상 어디를 가든
너를 자전거 앞 의자에
태우고 다녔지. 그렇게 너를 자랑하며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네 손에
돈이랑
과자가 한가득 안겨있곤 했어.
하루는 새론 산 빨간 구두를 신겨서 자전거에 널 태우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린 거야.
그 구두가 가죽으로 만들어서 비쌌지. 보드랍고 아주 예뻤어.
근데 어쩌겠냐. 그다음 날 다시 똑같은 걸로 사서 신겼지~
에고고~ 휴. 너 낳은 달이라 그런지 이렇게 몸뚱이가 아프다.
해마다 내 생일날이 되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엄마에게 듣는 이야기다.
전화해서는 매번 같은 레퍼토리를 쏟아내신다.
근데 신기하게도 내 생일만 되면 날이 추워진다.
그동안 늦가을 정취를 맛보다 가도 내 생일날만 되면 어김없이 추워지니 엄마의 깊은 주름살에 담긴 삶의 애환이 주문이 되어 반응을 하는 건지 신기할 뿐이다.
엄마와의 통화에 무덤덤하게 ‘응, 응’으로 대꾸해 주는 내 눈은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든다.
엄마의 젊음을 먹고
나는 자라났고
나의 장성함 속에서
엄마는 늙음을 맞이하셨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 어찌 어려움이 없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때는 고생 가운데 젊음이 있어서 견딜 만했다고~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훌쩍 지났음에도 하늘의 뜻은 여전히 알기 어렵고, 이제야 조금씩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매년 생일날마다
엄마의 레퍼토리를 들으며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철이 들어간다.
짙어진 단풍이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바람에 거의 떨어지고
엄마의 레퍼토리와 함께 창문을 흔드는 바람의
짓궂은 움직임
속에서
내 가슴은
희고 가는 첫눈을 기대해 본다. 내 생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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