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용실

아침의 보석 "젬마"

by 푸른 잎사귀

믹스커피 한 잔

에이스 크래커 미니사이즈 1개

왕대추 3알

미니 자유시간 1개

야채김밥 1줄 중 3개


위에 적은 목록은 머리 염색하러 들어간 미용실에서 먹은 간식들이다.

요즈음 거울을 볼 때마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염색한 지 어느덧 3~4개월이 지났다는 신호다.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오늘은 맘먹고 동네 미용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걸 싫어해서 손님이 없는 미용실로 들어갔다.

“머리 염색하려고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보며 체구가 많이 통통한 원장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어서 오세요’라고 한 후 힘겹게 일어나며 옷장 문을 열더니 가운을 꺼낸다. 어딘지 모르게 미용실 하고 안 어울리는 외모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머리 길이를 물어서 ‘지금 같은 단발로 해 달라’고 하자 ‘커트해 본 적 없냐’며 ‘커트해서 웨이브 하면 훨씬 고급지고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한다.


“제가 머리에 손 많이 가는 걸 안 좋아해요. 염색도 안 하고 싶은데 일을 다녀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예요.”

“그럼, 이 정도는 염색 안 하셔도 괜찮으세요. 요즘은 염색들 잘 안 하시고 흰머리 있어도 자연스럽게 다니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요즘 경제가 어렵잖아요. 제가 아는 분들은 집에서 많이 하시더라고요.”

“제가 젊은 동료들이랑 같이 일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흰머리가 보이는 것은 신경이 쓰여서요.”


그렇게 나의 머리는 일단 단발로 다듬어졌고, 머리색이랑 비슷한 색으로 염색약이 발라지고 있었다.

가위질을 할 때도 염색약을 바를 때도 원장님은 힘든 숨소리를 냈다.

배가 많이 나오셨고 그래서 힘이 드시는지 숨을 쉴 때마다 계속 ‘쌕쌕’ 소리를 내셨다.

머리를 하며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미용실 이용의 통과의례 같은 시간이다.)


단골은 없으시냐, 무슨 일을 하시냐, 결혼은 하셨냐, 몇 살이냐, 아이들은 몇이냐, 단아하고 세련돼 보이는 인상이다, 직장은 어디에 있냐, 사는 곳은 어디냐, 최화정 닮았다는 얘기 듣지 않냐, (여기서 빵 터졌다.) 등


염색약으로 모든 머리카락을 뒤덮은 후 40분을 놔두어야 한다고 해서 핸드폰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대추차, 생강차, 커피 중에 뭐 드시겠어요?”

“믹스커피 한 잔 주세요.”


잠시 후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에이스 과자 드시겠어요? 커피에 찍어 먹으면 맛있는데.”

순간 망설이다가 좋아하는 조합이라 달라고 해서 감사히 먹으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부스럭 거리며 비닐봉지에 담긴 왕대추를 가져오더니 단골손님이 농사지은 것이라고 가져왔다며 드시라고 3알을 종이컵에 넣어준다.

달고 맛있다고 하니까 더 드시라는 걸 사양했다.


조금 있다가 바구니 안에 놓여있는 자유시간 미니사이즈를 갖다 주며 이거 맛있다고 먹으라 한다. 이따 갈 때 몇 개 가져가라고 하고 길 건너편 아동센터에 사다주기도 했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오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냉장고에서 김밥을 꺼내 오신다.

만원에 3줄 하는 김밥을 사서 끼니때마다 먹는다고 하면서 나보고 먹어보라기에 아니라고 괜찮다고 했는데 김밥이 더 있다며 나눠먹어야 맛있다면서 3개를 갖다 주신다.

이 집이 맛있다며 햄은 빼달라고 해서 야채를 더 많이 넣었다며 어디서 샀는지 설명해 주신다.

더 먹으라는 걸 아니라고 식사하시라고 하고는 핸드폰으로 눈을 돌리며 검색을 하고 있는데, 거울로 비치는 원장님 모습이 내 신발을 빤히 본다.

“그 운동화 나이키예요? 디자인이 예뻐요.”

“이거 퓨마예요. 네~ 디자인이 예뻐서 샀어요."


그리고 잠시 침묵.


둘만 있는 공간에서 침묵이 싫으셨는지 본인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조용히 핸드폰 검색을 하려는 나는 계획을 바꿔서 이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나에게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다.

홍대 산디과를 가려했는데 떨어졌고, 직장 다니다가 뒤늦게 미용을 배웠다.

30대에 송파 일신여상 앞에서 동생과 미용실을 오픈해서 하다가 성남 상대원으로 이사 와서 커트 전문으로 일을 했는데 잘 자른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잘랐다. 그땐 손님이 그렇게 많았고 젊어서 인기가 좋았고 일하는 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집에서 쉬는데 무료해서 2년 전 다시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남편이 전기 쪽 일을 한다. 돈도 잘 번다.

미용실 전기며 인테리어를 거의 꾸며주었다. 가게가 깨끗하고 예쁘고 마음에 든다.

이제 단골도 잡혀가고 있는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가게를 접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주변에서는 집에 있으면 뭐 하냐. 일이 있는 게 좋다고 하는데 화요일 빼고 거의 매여 있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이번 주는 3일 정도 손님이 없었다. 김장철이라 다른 곳도 손님이 없다고 하더라.

나이는 55세다.

집은 이 근처에 산다.

딸 1명이 있고 퇴근 후 김밥 샀던 분식집에서 순두부찌개를 포장해 가서 먹기도 한다.

가게 세는 66만 원인데 주인이 60만 원만 내게 해줬다.


샴푸를 하고 드라이를 하면서 내가 물었다.

“미용실 이름이 ‘젬마’던데 무슨 뜻이에요?”

“아침의 보석이란 뜻이에요.”

“와. 너무 예쁘네요. 원장님 가게 계속하셔야겠어요.”

“그러게요. 고민은 되는데 지금까지 버텼는데 접기는 아깝긴 해요.”


드라이가 끝나고 계산을 하였고 명함을 받았고 그렇게 대화도 마무리되었다.


발걸음이 멈춘 곳,

가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한 사람의 이야기.

오늘은 그 이야기를 글에 담아 보았다.

내가 사는 동네의 아침의 보석과 같은 미용실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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