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5월 13일

-샤파 연필깎이

by 푸른 잎사귀

서기 1982년 5월 13일 (목요일) 날씨 비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심부름

일어난 시각 : 오전 6시 35분


오늘은 엄마께서 연필 깎기를 사주셨다. 연필깎이가 또 있었다. 한 개 연필깎이는 고장이 나서 깎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새로 산 연필깎이로 깎으니까 참 잘 깎여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마음씨 곱다고.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이 당시 최고의 연필깎이는 샤파 연필깎이였다.

기차모양도 있었고 삼각형 모양도 있었다.

샤파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으면 나뭇결이 고르고 예쁘게 깎이고 연필심도 적당히 뾰족하게 깎여서 플라스틱 소재의 이단으로 필통에 가지런히 넣으면 모양도 예쁘고 정리가 잘 된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았다.


문방구에서 싸게 파는 미니 연필깎이로 깎다 보면 연필심이 뚝 뚝 부러지고 나뭇결도 거칠게 깎이곤 했다. 그래도 손으로 연필을 깎아가는 게 귀찮고 힘들 때는 미니 연필깎이가 효자노릇을 했기에 연필심이 부러지지 않게 끝까지 돌리지 않고 중간에 멈추는 기술도 습득했었다.


아버지께서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연필을 기가 막히게 잘 깎으셨다. 도루코칼을 가지고 새 연필을 가장자리부터 가운데로 삼각뿔 모양으로 일정한 모양을 만드시며 슥슥 잘라내실 때는 마치 기술자가 목공소에서 기계로 나무를 자를 때 나무톱밥이 수북이 쌓이는 것 같이 신문지 위로 깎여나간 나무조각들이 수북이 쌓이면 신기해하며 손으로 만져서 부셔도 보고 냄새도 맡으며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나는 새 연필의 나무 냄새가 참 좋았다.

아버지께서 정성 들여 깎아주셨던 그 연필이 그리워서일까.

나는 연필깎이가 있어도

가끔은 연필을 칼로 깎아서 쓰기도 한다.

내 마음대로 모양을 낼 수 있고

연필심도 뾰족하게 뭉툭하게 할 수 있다.

종이에 서걱서걱 연필심 긁히는 소리가 좋다.

힘을 주어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리고

코에 갖다 대고 연필냄새를 맡으며 향수에 젖는 그 찰나의 시간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