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과 [싯다르타]
이것은 우연일까?
살다 보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일’들이 생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오늘 만난 그 기이한 일은 책을 읽다가 일어났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책을,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읽게 되었는데 여주인공의 상황이 같은 마무리로 끝이 나는 것에 갑자기 심장이 뛰고 왠지 모를 전율 같은 것이 흐르면서 신기함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이 치밀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간적으로 어떻게 이렇게 일치시킬 수가 있는지
그건 일부러 만들어 내려고 해도 쉽지 않은 그런 일이었다.
센터 내 도서담당이 나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책을 한 번도 읽을 수가 없었다.
맡겨진 일을 다 했음에도 말단으로써 눈치가 보이는 것도 있었고,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책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방학 중이라 아동들이 몇 명 없었고, 센터장도 회의가 있어 일찍 퇴근을 하였고, 실습 선생님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고 선임 및 다른 직원들도 급한 일은 없던 중이라 여유 있게 퇴근을 준비하면 되는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평소 눈여겨보았던 책을 꺼내서 살짝 눈치를 보며 읽고 있었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무실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내부가 보이는 개방형이고 책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내 자리가 문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찌 보면 쉬는 꼴을 못 보고 시샘하는 분위기라 할까? 센터장이나 선임은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며 카톡 하고 인터넷쇼핑을 하면서도 말단이 부지런히 일하고 쉬는 건데도 일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서 더 일을 시키려 하는 희한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책을 보고 싶어도 일부러 안 보다가 오늘은 궁금함에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급하게 읽게 되었던 것이다.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할 수 있기에 되도록 속독으로 빠르고 신속하면서도 꼭꼭 씹어서
첫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은 후 퇴근을 하였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 오래전 읽다가 마무리 못한 책을 꺼내서 읽는데
이럴 수가 ~~ ‘윤회’라는 내용의 마지막에 나온 문구가 아까 사무실에서 읽었던 책의 마지막 부분과 똑같은 것이다.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맞춰서 읽어라 해도 맞추기 힘든 그런 타이밍과 상황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 센터에서 읽었던 책은 무라세 다케시의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이었고,
집에서 읽었던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에서 기차탈선사고로 약혼자를 잃게 된 히구치가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다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부분이 나오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붙잡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싯다르타]에서는 ‘윤회’ 마지막 부분에서 카말라가 싯다르타가 떠난 후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끝이 났다.
두 소설의 공통점이 ‘남자는 떠났고 여자는 임신을 했다’였다.
이런 내용들의 소설이 많이 있지만,
오늘 내가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잃지 않았다면, 아니 읽었어도 이 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또는 읽었어도 집에 도착한 후 읽다만 [싯다르타]를 읽지 않았다면, 아니 읽었어도 이 부분을 읽지 않고 책을 덮었다면, 또는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내일 읽었다면..... 많은 경우의 수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책을 읽다가 마주하게 되는 이런 신비롭고 신선한 경험이 너무 신기했던 날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 읽기에 대한 매력에 더 빠지라고
책을 읽다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도 더 들으라고
독서와 글쓰기에서 갈팡질팡 하는 나의 번뇌가 쏘아 올린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우주의 저 멀리서 날아온 선물이 아니었을까.
고맙다.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