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나는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 던져졌다. 남편의 지방근무로 인해 초등학생 두 아이를 데리고 따라간 곳. 충청도의 DNA를 가진 나였으나, 지방살이의 낯섦은 생각보다 컸다. 우선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던 것이 언어였다. 투박하고 강한 억양의 사투리는 알아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지방 가기 전 국가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였고 바로 첫 직장인 한 직업학교에 출근하게 되었다.
20여 명의 직원과 여러 명의 이사님이 포진한 그곳에서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언어보다 무서운 '사람의 벽'이었다. 업무를 관장하던 한 여상사는 기묘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의 자리조차 분리시켰다. 점심시간이면 편이 나뉘어 식사를 했고 대화의 강줄기도 갈라졌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배제된 편'에 서게 되었다. 불합리한 업무배정, 그녀의 총애?를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뉜 기막힌 상황이었다. 그 불합리함 속에서도 침묵하는 동료들의 뒷모습. 그들의 무거운 침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난 그녀에게 조아리는 법을 몰랐다.
조아리고 싶지 않았다.
그 대가로 이유 없이 좌천되기도 했다.
하지만 난 당당했다. 내 일을 묵묵히 해냈고, 결국 내담자들이 나를 찾음으로써 본청으로 복귀하는 작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니까. 이후엔 음지에서 나를 응원하는 이사님도 생겼다. 그때 알았다. 내가 틀리지 않다는 걸.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져 서로를 감싸는 대신 비난하고 외면하던 그 괴로운 역동 속에서 난 1년이란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그때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수치심과 외로움, 혼자라는 느낌에 압도되어 혼자 눈물을 쏟아야 했다. 가족에게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1년을 보내고 난 교육청으로 이직을 했다. 내 뒤로 몇 명의 직원이 사직서를 냈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으니 난 충분하다. 사내의 불합리한 분위기에 변화를 원했으나 주변 직원들은 너무 무기력했다.
지금의 시선으로 그녀를 다시 소환해 본다. 그녀가 휘두른 권력과 배제는 나의 부족함, 동료들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다. 그녀 자신의 결핍과 불안 때문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왕초보상담사였던 당시의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기에 수치심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녀는 무엇이 그토록 두려워 그 얄팍한 권력 뒤에 숨어 자신을 방어해야 했을까, 그녀의 내면엔 어떤 나약함이 숨어있었던 것일까, 만약 지금의 연륜이 그때의 내게 있었다면, 나는 과연 그녀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었을까^^ 그녀의 삶이 지독하게 궁금해진다.
이제 그 수치심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나는 그 불합리 속에서도 '상담'이라는 본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실력으로 증명해 냈으니 나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 그 지옥 같은 역동 속에서 나다움을 지켜낸 승리자였다. 초보상담사인 나는 충분히 당당했고, 침묵하지 않은 나의 용기는 옳았다고. 그 시린 겨울을 버텼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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