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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전혀 다른 생각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형태의 만남을 경험한다. 비슷한 듯 다른 저마다의 개성 있는 생김새만큼이나, 각자 나고 자란 다양한 백그라운드와 성격, 이에 대처하는 경험치에 따라 다양한 인간상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특히 만약 해외 생활이라도 하게 되면 그 양상은 더 복잡해지는데, 언뜻 생각하면 다양한 군상들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 같지만 사실은 아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바로 여태까지 내가 경험한 세계와는 다른 인식과 가치관을 가진 ‘문화’라는 것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와 생김새가 전혀 달라 시선을 어디에 뒤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눈을 마주쳐야 할지 인중을 바라봐야 할지, 눈을 마주치려고 하면 움푹 들어간 파란 눈과 조화롭게 오뚝 선 콧날에 시선이 묶여버려 나의 동공은 방황자가 된다- 그들이 쏟아 내는 자녀들의 교육, 일에 대한 생각,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듣고 있노라면 역시 유럽은 유럽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제도와 정책, 시스템적인 자세한 내용 추가 예정)


기존에 갖고 있던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경험, 전부라고 믿고 있었던 나의 온전한 세계가 단지 큰 전체 덩어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인식, 나와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고관’, ‘인식’이란 것이 사람과 환경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에 따라서도 얼마나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국경 울렁증

슬로바키아는 무려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네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약간 동유럽에 치우친 유라시아 대륙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럽의 배꼽’이라고도 불리는 등 사통팔달의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지리적인 요인 때문에 지난 수세기 동안 이민족의 침입을 자주 받을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다른 나라와 병합되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했었지만 오늘날은 유럽연합의 멤버로서 경제 성장에 나름 한창 몰두하고 있는(아직 성장세는 느리긴 하지만…) 유럽의 평화로운 마을 느낌이 나는 작은 나라이다. (자세한 관련 내용 추가) 


유럽 대륙은 모두 육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다’는 의미 또한 일상적이고 가볍게 받아들여지는데, 분단국가 출신(?)인 나로서는 이 또한 처음 접해 본 느 ‘국경’의 개념이었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침이면 슬로바키아에서 각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에 있는 자신의 일터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어 출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다시 통과해 슬로바키아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경제적인 규모나 순위를 따져 봤을 때 슬로바키아가 위의 세 나라보다 낮은 편이기 때문에 국내보다 임금을 많이 주는 EU연합의 나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국경을 넘어 통근이 자유로운 평범한 국경이라는 개념을 접해 본 적이 없던 나였기에 4년 전 인천공항을 떠나 처음 비엔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바키아로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엄청 떨리고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무장한 군인들이 국경을 지키고 있으면 어쩌지, 혹시 북한에서 왔냐고 의심하면 어쩌지, 현지 말도 영어도 잘 못하는데 꼬치꼬치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등등 마음속으로는 잔뜩 졸아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좌불안석이었다. 국경을 넘어본 경험이라곤 동남아 여행을 할 때 공항에서 출입국 수속할 때뿐이었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런 까다로운 절차가 기다릴 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국경’이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서로를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치하고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유럽에서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자연스러운 이동’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범법행위 혹은 그 이상으로 사상, 체계, 이념을 건드리는 위험한 행위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EU연합에 속한 유럽의 나라들은 쉥겐조약에 의해 비교적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으며 국경 초소에는 몇몇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으나 항상 있는 것도 아니며 검문도 가끔가다 랜덤으로 받을 뿐이다. 항상 여권을 챙겨 다니긴 하지만 EU연합 내의 간의 이동에서는 여권을 제시한 경우는 거의 없고 다만 예전에 크로아티아(비 유럽연합 국가)로 여행을 하러 갔을 때에만 꼼꼼하게 여권과 비자, 대기 시간까지 총 2시간이 걸렸던 적을 제외하곤 웬만하면 그냥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우리나라 국도의 하이패스처럼 각 나라마다 국경을 지날 때 ‘비넷’이라고 하는 통행증을 차의 정면 유리창에 붙여야 되는데, 국경 근처의 판매처에서 구매하며 나라마다 비넷 가격과 유효 기간, 구매 방법이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에 특히 유럽을 자가용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꼼꼼히 챙기는 부분이다. 이렇듯 각 나라 간의 이동에 별 제한이 없기 때문에 1~2주 동안 7개국이나 10개국을 둘러보는 유럽 여행 패키지도 가성비를 내세워서 성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렇게 하루에 한 나라 꼴로 찍으며 유명한 관광지 옆에서 인증숏을 남겨봤자 오히려 그 나라의 분위기와 느낌 등을 느껴볼 새도 없이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기회와 가능성은 애써 외면하며 질보다 양에 치중하는 여행이 될 뿐이다. 차라리 두 세 나라만이라도 찬찬히 둘러보는 게 오히려 가성비를 챙길 수 있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국경 이야기로 돌아와서, 처음에는 앞에서와 같이 국경을 넘을 때마다 긴장하고 경찰들과 애써 눈을 안 마주치려 소심한 제스처를 취하곤 했었지만(잘못한 게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작아지는 나), 이제는 국경을 넘어 여행도 많이 다니고(이탈리아 여행을 가려면 두 번의 국경을 넘어야 한다) 장도 수시로 보러 다닌 결과(서유럽에 속하는 오스트리아 마트의 제품이 가격은 좀 높아도 질이 좋다) 다행히 나의 국경 울렁증은 극복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국경이 폐쇄되다시피 해서 넘을 수가 없다. 어서 빨리 자유롭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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