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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부터, 유럽에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다

가보지 못한 세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아니지… 어찌 야박하게 한 가지만 꼽을 수 있으랴. 명색이 요즘 같이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선택할 것이 어디 한두 가지가 아니어야지. 때문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오늘은 복잡하고 애매한 옵션과 대안들이 얽히고설켜있는 실타래를 조심조심 풀어낸 결과의 현재형이며, 앞으로도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들을 마주하며 인생의 선들을 이어 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선택하지 못한 옵션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아직 인생을 논할 만큼 많은 나이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30년은 훌쩍 넘는 세월을 살아오다 보니우리의 예상대로  예상 가능하고 고민을 거듭했던 옵션이 아니라 때론 생각지도 못한 선택지가 갑자기 부지불식 간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인생에 확 던져지기도 한다. 


‘유럽’은 내 인생에 없는 옵션이었다. 30여 년을 대한만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한국인. ‘소위 라테는~’ 대학 시절 방학시즌이나 휴학을 하고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유행처럼 퍼질 때가 있었는데, 비행기표도 너무 비싸고 유럽 여행 가서 납치된 스토리를 그린 테이큰 같은 영화만 봐놔서 유럽에 대한 로망은 있지만 막상 떠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대신 가까운 중국으로 1년 교환학생을 다녀왔기에 해외 생활은 동양 문화권에만 만족하기로 했었다. 로마풍, 유러피안, 창백한 피부에 멋진 북유럽 남정네들은 영화에서나 만나는 걸로 만족하고 나의 스펙과 현실을 냉정히 따져봤을 때 유럽은 무리겠다 싶어 노년에 하는 유럽 여행 정도로 버킷리스트로 구석에 적어놨었다. 


 나와 유럽과의 첫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전 남자 친구(현 남편)가 나의 이런 약점을 알고 나에게 뿌리치기 힘든 ‘프로 로즈 딜’을 제안했다. 당시 우리는 1년 정도 연애를 한 시점이었고 그는 나의 매력에 폭 빠져(?) 하루빨리 결혼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결혼을 한다면 물론 그와 할 생각은 있었으나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섭고 겁이나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싶어서 결혼 날짜 밀당을 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가 제안한 2012년 9월은 추석 연휴와 주말이 운 좋게 낀 덕분에 무려 7박 9일이라는 신혼여행이 가능했었고 그는 이탈리아 신혼여행을 제안했다. 신혼여행 날짜의 기막힌 타이밍에 결혼 날짜를 잡은 것도 참  단순한 발상 같기는 하지만 딱히 명분 없이 결혼 날짜만 미뤘었기에 그 딜은 나를 무장해재 시키고 말았다.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유럽을 밟아볼 기회가 없을 거야’ 30 평생 동안 살면서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던 유럽에 대한 로망, 단 한 번도 실현되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꿈이 실현될 수 있다니… 그렇게 나는 노후에나 밟아볼 거라 예상했었던 유럽 땅을 결혼과 함께 내딛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해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었다. 등을 지고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이루어진다는 소원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분수에 와서 동전을 던지면 두 번째 방문이 가능하다는 얘기, 두 번째로 와서 동전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온다는 얘기, 세 번째는 헤어진다는 얘긴가…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었다. 다음에 세 가족이 되어서 또 오게 해 주세요. 


그 사람만이 부르는 기운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남편을 만나고 처음 이탈리아 딸을 밟고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진 지 5년 만에 다시 유럽을 밟을 운명을 맞게 되었다. 남편의 업무 차 유럽에서 일을 해야 할 기회가 생겼고 몇 년간 슬로바키아라는 유럽의 작은 나라에 살게 된 것이다. 진짜 내가 유럽에서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을 살게 된다고? 당시 회사를 다니고 있던 나는 워킹맘으로서의 만족감을 느끼며 열심히 다니고 있었지만 유럽에 대한 기대와 흥분 또한 감출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유럽에 여행이 아닌 거주하러 도착한 비엔나 국제공항 공항은 도시의 명성에 비해 아담하고 소박한 편이었으며 비엔나 미술관에 전시관 고흐, 모네 등의 그림들이 포스터로 전시되어 있었다. 아직도 이 곳에 도착했을 때의 그 흥분과 긴장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국에서는 찜통더위와 미세먼지가 혼재된 불쾌지수가 높아져만 가고 있던 그때, 지구 반대편 이곳 비엔나에서는 내륙성 기후답게 습기가 없기 때문에 한창 덥다가도 그늘에만 가면 이내 시원해지고 미세먼지 앱을 켤 필요도 없이(미세먼지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 멀리까지 확 트인 가시거리와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는 환경에 경이로움마저 들었다. 차량으로 이동하며 처음 접하는 유럽의 들판과 소떼들 그리고 저 높이까지 보이는 하늘과 마을, 그리고 하늘을 정말 다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한국에서는 마천루와 머리를 이리저리 비집고 고개를 위로 젖혀야 그나마 구경할 수 있는 하늘이 이 곳에서는 눈만 들만 바로 180도 시야가 확보되는 자연 그대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슬로바키아로 들어왔다. 내가 앞으로 몇 년간 살아야 할 이 곳. 잘 부탁한다. 나 한국에서 온 경단녀야…이 곳에서 내가 비빌 곳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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