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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1)

 해외에 나와 살다 보니 나고 자란 고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미쳐 느끼지 못했던 혹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삶의 여러 요소들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사회 제도와 관련된 불평등, 귀찮음, 신속함, 편리함 등의 여러 가지 감정들과 공통된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암묵적으로 정의되고 인식했던 상식들을 한국을 벗어나 이렇게 바라보노라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떤 제도나 인식들은 때론 과거의 관성대로 오늘날까지 받아들여 지기에는 시대착오적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있고,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진행되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빚어지게 된 사회 문제들도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으면 감지하지 못했을 혹은 감지를 했다 하더라도 이렇다 할 비교대상이 마땅치 않았고, 여전히 그 사회에 속해있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 없이 따라야 했기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다고 해서 당장 행동으로 옮기거나 단번에 기존의 입장과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밖으로 표현하기 전에 한번 되돌아보는 습관과 어느 정도로 받아들이고 영향을 미칠게 할지는 조절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다는 것에 두려 한다.  


남의 시선에 의연한 유럽 사람들

유럽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값싼 경비로 여행을 마음껏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교통편에서 아주 많은 이점이 있다. 자동차로 7시간 걸리는 이탈리아나 10시간 거리인 네덜란드까지도 기름값만 들고 다녀올 수 있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 영국이나 스페인으로의 여행도 100유로 미만으로 다녀올 수 있다. 이렇게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닐 때마다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는데, “유럽 사람들 진짜 옷 못 입네.”이다. 


한국에는 브랜드에서 매 시즌이 되면 유행할 컬러와 패턴에 맞춰 옷이 출시된다. 그러면 미디어나 패션 잡지 등에서는 이를 샐레브러티와 연결시켜 인스타와 여러 매체 등에 지속적인 노출이 되고 어느새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집단과의 소속감을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은 이런 정보와 소식에 민감하기에 그만큼 수용도 빠르고 자연스레 소비로 이어지게 되며 ‘유행’이라는 사회 현상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유럽은 일단 기본적으로 그런 시즌성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 브랜드마다의 특징을 지닌 패턴과 스타일이 정해져 있는 편이고 지난 시즌의 옷과 비슷한데 조금 다른 그런 옷들이 신상으로 나오는 것을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작년에 어떤 패턴의 옷이 유행했다면 다음 시즌에는 이를 변형해서 작년에 구매를 미룬 사람이나 그 디자인에 만족했던 소비자를 공략하는 느낌이랄까. 상품의 수도 엄청 다양해서 유행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다양한 옵션에서 고르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자라’라든지 ‘h&m’도 한국과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듯하다. 한국에서는 색감이 그리 화려하지 않은 점잖은 색깔과 ‘한국의 자라 스타일’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어떤 카테고리가 있는 듯 한 느낌인데, 유럽에서 파는 자라 옷은 보면 참 색깔이나 소재 등이 화려하고 드레시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입으면 욕먹을 만한 옷들을 여기서라도 입어보겠다며 용감하게(?) 입고 다니기도 한다. 


그렇다. 한국에서는 옷을 튀게 입으면 욕을 먹는다. 몸매가 좋지 않은데 노출을 했다거나 옆구리로 군살이 튀어나오거나 너무 달라붙게 입는 것도 다 그 욕받이의 대상이다. 기분이 나쁘지만 ‘내 잘못이오~’하고 다이어트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인정하며 수긍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한국 사람들은 남의 잘못된 태도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겸손함의 미덕을 갖춘 사람들인가? ‘내 돈 내산’이라도 남의 생각과 판단이 들어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남의 눈치를 보고 행동하는 것이 ‘예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공동체 문화와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 세계관이 반영된 된 문화 탓이겠지만, 밖에서 바라본 한국은 유독 이런 경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나 역시도 유럽에 처음 왔을 때 그런 인식을 지닌 100% 한국 사람이었다. 언론과 매체에서는 감성을 지닌 유러피안 스타일이라느니 세련되고 우아한 유럽 스타일 패션 감각이라느니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로 포장해서 마케팅해서 물건을 팔아먹기에 바쁘다. 하지만 정작 유럽 사람들은 자신의 좋아하는 취향을 존중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함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거리의 멋쟁이이고 패션에 예민하며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천 편인율적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기조를 쫓지도 눈치 보지도 않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당히 거리를 활보하는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길거리에서 스쳐가는 이의 짧은 셔츠 사이로 삐져나온 뱃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너무 용감하다, 다이어트라도 하고 입지’라고 생각하거나 가슴골이 드러난 옷을 보고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주변에서 뭐라 안 하나’라는 자연스러운 비난이 나와서(물론 혼자 마음속으로) 놀란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옷을 입으면 누군가의 카톡창에서 험담을 당하거나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기에(아마도 옆 친구랑) 그 습관대로 마음속에서 그들을 ‘평가’ 질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일면식도 없는 여러 사람들을 그렇게 평가질 하면서 나의 편협한 잣대로 몇 초안에 결론짓는 내 모습에 회의가 들었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마치 나의 그 기준들이 진리인 양 재단하는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설마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거야’라는 위로를 얻고자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충격적 이게도 아무도 상대의 옷차림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더라. 적어도 우리는 누가 옷을 이상하게 입으면 그 사람이 지나간 뒤에 몇 명씩은 다시 돌아보는데 여기는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옷차림이 아무렇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이가 보다 나만 유난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곳에서는…


 엉덩이가 터질 것 같은데 꽉 끼는 청바지를 입은 아저씨, 한국에서는 80년대 패션이라고 비웃을 청청패션이 자주 발견되고 빨강 초록 파랑 색색깔의 바지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다양성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세상. 유럽 사람들은 오히려 유행에 그리 민감하지 않고 다양한 패션 세계를 인정해 주기에 유명한 유럽 패션 브랜드나 제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않는, 그대로 존중하는 가치관이 이들을 이렇게 당당하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물건을 살 때도 입을 것을 결정할 때도 남의 시선을 따지고 주변의 조언이라는 이유로 간섭을 허하는 유연함 밑에 숨어있는 수동적인 자세, 혹은 좀 멀리 간 것 같긴 하지만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정해진 하나의 방식과 룰을 따르는 것에 길들여졌기에,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옷을 입는 방식 조차로 뭔가를 따라야 안심이 되는 성향을 형성한 것은 아닌가 하는 비합리적인 혹은 합리적일 수 있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모두 비슷하게 보이도록 교복에 갇혀두고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복마저도 똑똑한 마케터들은 유행을 만들어 롱 패딩을 입지 않거나 뽀글이 점퍼를 사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조급증을 만들어 내는데 능하다. 또 그런 가치관을 학습받아 왔기에 이런 전략도 아주 잘 통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문화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기보다는 비슷한 옷을 왜 또 사야 하는지 비싸지 않은 것이 유행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든지 그 기저에 깔린 우리의 이런 성향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누군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한국에는 왜 이리도 많이 존재하는지.., 간단하게 그 나라의 국민성과 성향을 알아보고 싶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입고 신는지는 보면 될 것 같다. 


 한국에서는 무채색 계열만 보다가 여기서 유치원생 때나 입었을 법한 원색 칼라들을 보니 처음에는 유치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을 자주 접하며 패션이 표출하는 다양성만큼 그 자연스러움만큼 그들은 나보다는 좀 더 개방적이고 유연하구나 하는 생각이 생기고 오랫동안 형성되었던 아니 접하지 않았기에 하나의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여러 고정관념들이 바뀔 수 있는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있는 옷 하나에 이런 깨달음을 얻었는데 다른 것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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