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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현지어 배우는 그 길은 멀고 험한 길

유럽에서도 영어가 잘 통한다. 큰 쇼핑몰에만 장을 보고 관광지만 구경 다닐꺼라면… 하지만 현지에 적응을 해서 몇 달 혹은 몇 년을 살아야 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잠깐 발만 담그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살아야 한다면 그 나라의 현지어를 배우는 고단함과 어려움은 이로 인해 얻게 될 즐거움과 만족감에 비하면 기어이 감당할 수 있는 과정 이리라.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열린 마음가짐과 그 나라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비록 완벽하지는 못하더라고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슬로바키아 어학 수준을 갖추리라고 마음먹었다. 주변에서는 차라리 독일어를 추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차피 지금 배워봤자 한국에 가서 잊혀버릴 것이라면 슬로바키아 사람들과 소통하며 더 많은 추억과 기억을 남겨줄 이 나라의 언어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학창 시절 중국 교환학생으로 1년간 공부하면서 깨달은 바에 의한 것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하게 되면 언어소통의 실용적인 역할은 정말 도구로써 나의 일상생활을 자연스레 돕게 되고 이로 인해 얻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즐거움은 시너지를 내 나의 생활을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언어 공부 차원의 수업과 공부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동기부여를 얻게 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말 그대로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과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나와는 전혀 다른 그들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유연함을 배울 수 있는 그 과정들이 너무 좋은 기억으로 아직 내 안에 남아있었기에 이번 유럽에서도 그런 경험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슬로바키아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슬로바키 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이런 정보를 찾아다니던 중 아이의 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제공해주는 무료 슬로바키아어 레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 언어를 배울 생각에 두근두근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중국어 배울 때처럼 열심히 해서 1년 만에 기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리라. 큰 포부를 가지고 수업에 들어갔더니 그래도 명색이 국제학교인데 외국인 엄마들도 많을 텐데.. 수업을 듣는 사람은 나 포함 4명, 두 명은 이란 부부였고 다른 한 분은 한국분이셨다. 사실 나는 명색이 국제학교에서 듣는 (학부모 신분이지만…) 수업이기에 뭔가 글로벌하고 잘 반응해주고 리액션이 큰 활기 넘치는 수업을 상상했었다. 서로 통성명도 하고 가끔 만나서 차도 마시고 학교에서 마주치면 안부를 묻는 그런 사이가 되기를.. 하지만 부부 학생은 둘이만 항상 얘기하고 붙어 다녔고 가끔 이란 아저씨는 아주 가부장적인 의견으로 수업 부위 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이란 아주머니는 영어를 못하셔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나처럼 열정적인 성향을 지닌 한국 엄마와 단짝이 되어 그 후 주 2회 30분씩 6개월 동안 수업을 함께 들으며 교재의 1/3 진도를 끝낼 수 있었다. 사실 한국 같았으면 속성으로 6개월이면 한 권은 끝냈을 시간인데 시간도 30분이 뭔냐고 진짜 공짜 티 내냐.. 한 번에 2시간 정도는 수업을 해야 머리에 뭐라도 남지… 어쨋튼 그 시간 동안 책의 반도 끝내지 못했고 나는 선생님의 스타일과 태도가 맘에 안 든다고 나의 파트너 언니에게 투덜대기 일쑤였다. 그 언니는 이미 독일에서 5년, 슬로바키아에서 2년을 살았기에 어떤 분야든 유럽 스타일에 훤히 도가 튼 언니였다. 언니의 경험으로 보아 우리를 가르치는 이 선생님은 슬로바키아에서 흔히 찾을 수 없는 학생을 생각하는 열정을 지닌 선생님이라고 정리해주었다.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 가르치면 클레임이 들어와서 강사생활을 못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만 맞받아쳤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록 슬로바키아어를 배우던 중 갑자기 학교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해야 하는 바람에 그나마도 연명하던 슬로바키아 수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근데 뭐든 한국이 정말 잘 가르치기는 한다. 학원에서 학교에서 최상권을 하던 머리 좋은 인재들이 모여서 최고의 방법을 강구해서 가르쳐 주기 때문에 그 노하우는 계속 전수된다. 몇 조에 이르는 교육 시장의 규모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잘 가르쳐서 더 많은 학생을 유입시키고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다시 교육 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이야 세계 어디를 내놔도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을 가르쳐 주는 기술, 그리고 공부한 제대로 한 느낌이 드는 스킬을 알려 준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여태까지 배운 게 아까워서라도 그만 둘 수가 없었기에 나는 여기저기로 학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한인들 중에서도 슬로박어보다는 독어나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마땅한 정보를 얻을 데도 없어서 해외 생활을 동반자 구글 지도를 이용해서  리뷰수가 가장 많은 학원을 알아냈다. 기본적으로 아이의 학교를 벗어나거나 큰 쇼핑몰이 아닌 이상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었고 나도 당시에는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바디랭귀지를 써가며 학원을 등록하고 자세한 커리큘럼이나 방식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못한 채 다시 슬로바키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 기분이 들떴어 덜컥 등록을 해 버렸다. 


수업을 위해 새 공책도 사고 필통에 볼펜도 가지런히 넣어 학원 수업 첫 개강날.. 그런데 아뿔싸! 분명 나는 쌩초보반을 등록했는데 강사분이 원어민이 평상시 말하는 속도로 다다다다 수업을 진행하는 것 아닌가. 도저히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아노미 상태인지를 확인하려고 눈치를 살피는데 그 이상하게 그들은 선생님의 말에 웃고 대답하고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반에서 선생님의 말을 순도 100%로 못 알아듣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도 거의 체코나 헝가리, 러시아 등 이웃 나라의 같은 슬라브어 계통의 사람들이었고 70~80%는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나 말고 다른 동양계 학생들도 있긴 있었는데 그들은 취업비자로 일하러 온 사람들이어서 이미 3~4년 동안 일을 하면서 리스닝과 스피킹은 되는데 리딩이나 라이팅이 부족해서 온 사람들인 것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과 헛웃음이 중간에 피식피식 나오는 것을 참으며 몇 번을 다니며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발음이나 글자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하이패스 스타일의 수업 클래스를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고  아무것도 들리지도 읽히지도 않는 상태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다치지 더 이상 가혹하게 다치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환불 요청으로 나의 첫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영어로 슬로바키아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찾기로 했다. 홈페이지에 가격이나 시간표가 정확하지 않은 곳도 있어서 여기저기 메일을 보내며 열정적으로 학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비록 영어를 못하지만 그래도 듣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다행히 한 학원을 찾아낼 수 있었고 슬로바키아어와 영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럽은 학교나 학원이 9월에 첫 학기가 시작하는데 첫 번째 학원을 다니느라 그만큼의 진도가 이미 나가버린 것이었다. 벌써 1/3 정도의 진도가 나가 있었고 내가 그리 알고 싶었던 발음기호와 글자를 배울 기회를 또 그렇게 잃고 말았다. 기본적이 것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원 수업을 들어봤자 효과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또다시 환불 절차를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는 영어도 한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슬로바키아어보다는 영어에 올인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하에 문화와 예의를 따지던 나는 자연스럽게 슬로바키아어와 멀어지게 되었다. 현재 내 슬로박 실력은 어떠냐고? 안타깝게도 ‘도브리덴(안녕하세요)’. ‘도비데니아(안녕히 계세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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