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시간 얼마나 갖고 계신가요?
운동의 필요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끼지 못했던 나였는데, 굳이 운동 따위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이 건강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상당한 착각이었다는 깨달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인생의 길목에 서있다. 무엇이 되었든 필요하지 않으면 관심을 갖지 않는 성격이기에(그런데 필요하지도 않은 옷이랑 가방을 사고 싶어 하는 거냐!! 게을러서 운동하기 싫었다는 핑계는 그냥 이 괄호 안에서만 머무는 걸로...) 아픈데도 없고 걷기, 뛰기도 문제없다는 자가진단으로 이럭저럭 살아왔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 그러던 중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40분 거리의 등굣길을 며 칠 연속으로 운전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허리와 다리에 통증을 느꼈고 며칠 동안 증세가 계속되었다. 허리에 무리가 갈 만한 충격을 받거나 무거운 것은 든 것도 아닌데 예고 없이 찾아온 신체 이상 증세에 나는 적잖게 당황했고 내 나이와 생활 습관을 고려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그래서 뭔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아침 조깅.
건강 때문에 시작했지만 내게 찾아온 눈에 띄게 변화는 신체적인 측면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이 더 컸고 중요했다. 걸으면서 나는 여러 생각과 미뤄왔던 무시하고 지나쳤던 상상을 할 수 있었고 그러한 시간을 통해 나의 삶을 이루는 습관과 그와 관련된 태도, 삶에 대한 계획과 이 과정에서 내게 반복되었던 패턴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의 인생에 대해 전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생의 시곗바늘을 되감기하며 찬찬히 나의 과거를 반추해 보니 난 정말이지 앞 뒤로 막힌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목표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선 노력과 성실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노력 못 한 내 탓이고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있던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가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목표가 설정되면 과도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고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는 방법이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목표에 달성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효율성 추구. 근데 과연 이게 정답인걸까? 아.. 학생때처럼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습관도 꽤나 막힌 사고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방향이 잘못 되면 잘못 된대로, 실패하면 이를 경험하는 대로 깨닫는 게 있을진데, 처음에 생각하고 계획한 방향만이 정석인냥 집착하는 태도... 아 나란 인간은 고칠 것이 많은 인간이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깨닫기 시작해서.. 흠
근데 내가 추구했던 그 효율성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냥 나를 몰아붙인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초생산성>이라는 책에서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나에게 더 오랜 시간 일할 기회를 선사할 뿐인 효율성에는 관심이 없다. 놀아야 할 시간에 일을 하도록 내모는 성공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효율성이 아니라 생산성을 추구한다. 이는 상당한 여유 시간을 확보해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분명히 나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생각했던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맹목적으로 달리기면서 시간을 써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원하던 결과물에 다다랗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동안 힘써 온 것에 대한 본질이 모호해지는 상황을 몇몇 큰 터닝 포인트를 맞을 때마다, 삶의 어려운 결정을 할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모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게 세워 놓은 기준 없이 비전 없이 목표만 정신없이 세워 왔던 것은 아닐까... 뭔가를 시작하면 그와 연결되는 샛길 같은 대안이나 더욱더 개선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며 그 과정을 즐길 법한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의 목표를 지체하는 '적', '장애물'이 되는 잡생각으로 치부하고 '나의 생각이 확장될 기회'를 단절해 왔던 게 아닐까 하는 커다란 퀘스천 마크가 생겼다.
대학 전공은 언론정보학(신문방송학)이지만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학교에서 주최하는 단기 연수에 지원해서 1달간 중국을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어 중국어와의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중국어를 부전공하고 중국으로 교환학생 1년을 다녀왔으며 외대 중국어 교육 대학원에 입학했다가(자퇴함) 육아를 하면서는 실용중국어학으로 방통대에서 석사까지 했다. 워킹맘으로 일하면서는 중국인 사원들과 교류하며 업무를 진행했고 이곳 유럽에서 중국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중국어가 좋아서 중국어를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가 무슨 생각으로 공부를 한 거고 지금은 또 아무렇지 않게 중국어를 방치하고 있는 걸까? 이 외에는 할 게 없어서 그저 하던 일이라 능숙하니까 상황에 맞게 적당히 유지해 왔다는 것은 아닌지... 중국어 잘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서 그냥 그냥 해왔던 걸까....그렇게 중국어와 10년 넘게 때론 느슨하게도 타이트하게 관계를 이어 왔지만 지금은 또 영어한다고 중국어 방치 중.
생각해보니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많은 시간과 돈을 써왔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왔지만 이를 통한 큰 그림, 상위의 비전 비슷한 그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하는 점수를 얻기 위해 중중국어 hsk(한어수평능력고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또 회화 학원을 다녔는데 그럼 그 능력으로 뭘 하려고 그랬던 거지.. 한창 언어를 배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의미 없을 수 있다.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가 맞는 말이지. 그런데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슬럼프도 겪고 산전수전 겪은 나에게는 나를 달래주고 끌어줄 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소하는지도 궁금하네. 어쩌면 살아가는데 없어도 될 능력인데, 그 시간에 부동산이나 주식을 하는 게 나았을까.. 별 희한 안 생각까지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다.
비단 외국어 능력뿐이 아니라 여태까지 내가 갖게 된 경험, 능력, 지식 등이 내 인생을 멀리 길게 봤을 때 이것 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야 할지 고심해봐야 겠다. 그리고 실행하고 행동할 것이다. 단지 '배우는 즐거움을 찾아서'라고 해맑게 말하기에는 100세까지 살아야 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막막한 노후생활과 생계가 불안하므로... 그렇다고 나이가 찼다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며 진정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미래에 쓸모 있을 비전을 연관 지으면서 필요 없는 요소들은 솎아내야 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하던 일만 하지 말고 새로운 것도 도전해보기도 중요할 듯 싶다.
여태까지 생각 없이 살아오진 않았고 나름 부지런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여기에 더해 마냥 내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한 것처럼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감사하되 거기에서 유의미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나만의 표현으로 내놓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중국어와 영어를 언어를 배우며 희로애락을 느끼며 걸어온 여정, 외국에서 살면서 나의 생각의 경계와 경험이 넓어지며 깨닫게 된 가치들을 상기하며 나도 제대로 살아봐야 겠다.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이들, 비슷한 생각의 결을 가진 이들과 공유하며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 맹목적인 열심과 노력이 아닌 현명하고 지혜롭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법을 밝히고 싶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점검하면서 때론 발랄하게 때론 묵직하게 걸음걸이를 적당히 조절할 줄 알며 생기 있게 하지만 가볍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
다시 조깅예찬이다. 평소 때처럼 컴퓨터 앞에서 워드를 켜놓고 '글을 쓰자' 해서는 이런 쓰잘 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나의 심연까지 내려갔을 때 나오는 생각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겠다. 책은 저자와 나의 대화인데 그 대화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저자는 화자고 나는 청자이기 때문에 동의 혹은 반박 정도는 할 수 있으나 나의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는 없다. 대신 책을 읽고서 책을 덮은 후 바로 밖으로 나와 조깅을 하자. 굳이 무슨 생각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나올 필요가 전혀 없다. 핸드폰이나 이어폰으로 통해 나오는 외부의 자극 없는 조건이 전제되면 더 좋은 데, 일단 걷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내 뇌는 무의적으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일이나 생각들을 하나씩 불러오기 해서 나에게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준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당장 처리해야 할 설거지나 청소 빨래 등의 일거리들이 여유로운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의미 있는 생각을 할라 쳐도 게으름 부리지 말고 우리들을 처리하라고 집안일들이 아우성을 치며 난리 부르스를 친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면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에 시간을 내어주며 나를 소비하는 기분만 느끼게 된다. 나도 오늘 아침 아이를 등원시킨 후 조깅을 하러 나왔다가 나도 예상치 못했던 마구 떠오르는 생각들이 증발되기 전에 서둘러 부여잡고자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이렇게 글을 썼다. 그저 밖에 나가 걷고만 있어도 내가 회피하려 했던 혹은 정신없어 잊고 있었던 급하지는 않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과 생각들이 떠오른다. 믿기지 않는다고? 지금 당장 신발을 신고 가까운 산책로에 가만히 걸어보라.
대신 내게 청각적으로 시각적으로 생각을 방해할 것들은 두고 가는 것을 권한다. 나도 예전에 시간의 효율성을 추구한답시고 영어 파일이나 기분 전환으로 음악을 듣곤 했는데 나의 생각이 들어갈 틈을 차단되기 때문에 그냥 운동 효과만 있다. 만약 처음 조깅을 하는 거라면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도구들을 갖고 가는 것이 좋으나 비가 와서 조깅을 못 나가는 것이 속상해질 정도로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면 그런 도구들을 들고나가지 않는 게 좋. 특히나 심신이 지쳐 있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그냥 맨 몸으로 나가 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깅은 운동 효과보다는 생각 효과가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비 온 후의 달팽이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양새, 수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내 주변을 다시 둘러보게 되는 무뎠던 감각이 깨어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민트와 코발트 색을 섞에 놓은 듯한 푸른 하늘과 누가 심지 않았는데도 가지런히 피어나는 들꽃, 먹이 주는 이 하나 없는데도 연못에서 유유히 노는 오리 가족들의 풍경들은 모두 조깅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은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사한 삶의 조각들이다.
ps: 다음편은 '무기력은 스스로가 거는 self 제동장치'라는 글을 쓸 예정입니다. 물론 다시 마요르카 편으로 돌아올 수도 있어요ㅋㅋ 기대해 주세요 어제 올린 글 좋아요 해 주신 9분 감사합니다. 힘이 많이 됩니다 ^^ 그거 보고 힘나서 또 글을 썻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