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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관일 Sep 02. 2022

유머, 농담의 매너

스물, 이제 매너를 생각할 때(22)

유머, 농담의 매너

     

연말을 맞아 직장에서 부부 초청 회식이 있었다. 1차 회식이 끝나고 헤어진 후, 5쌍 정도의 부부가 별도로 모여서 뒤풀이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부장도 참석하였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남․여할 것 없이 폭탄주가 한 순배 돌았고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그렇게 되자 위아래를 따지지 않고 진한 농담이 오고가게 되었다. 거의 ‘야자타임’의 분위기였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부장이 어떤 에피소드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잘 알다시피, 예전에 내가 연세대학교 뒤에 있는 그 유명한 A식당에 자주 갔었잖아?”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P대리가 말을 가로채며 이렇게 말했다.

“아, 예! 마담이 부장님 애인이었던 그 집말이죠?”


그러자 부부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물론 농담이었다. 부장의 부인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으니까 슬쩍 놀려대고 싶은 유머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다. 갑자기 부장 부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기 시작하였고 부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부인의 눈치를 보는 거였다. 깔깔대며 웃던 다른 사람들도 ‘이게 아니다’ 싶었는지 웃음을 멈췄다.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부장이 얼른 “저 친구, 쓸데없는 농담을…. 그 마담이 왜 내 애인인가? 자네가 좋아했지”라며 수습하였다. 그렇게 뒤풀이는 썰렁하게 끝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분위기가 썰렁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부장이 예전에 다른 업소의 여성과 약간의 ‘썸씽’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인으로부터 상당한 불신과 의심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P대리가 그런 말을 하자 부인의 입장에서는 “아니? 또 다른 여자가 있단 말인가?”라며 흥분하게 되었고, 부장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난처한 입장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P대리는 영문도 모르고 농담 한마디 잘못했다가 황당한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건 실화지만, 이런 식으로 악의 없이 유머나 농담을 던진 것이 의외의 상황을 몰고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유머를 구사하고 농담을 던질 때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아무렇게나 웃긴다고 유머가 되는 게 아니다. 유머에도 매너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의 마음을 긁고 비틀거나 험담하는 독설식 유머는 절대로 곤란하다. 그건 유머도 아니다.


유머의 요령     


내가 잘 아는 사람 중에 J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자칭 유머리스트이다. 자기로서는 상당한 언변이 있다고 믿는다. 유머감각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때면 웃기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그래서 좌중의 폭소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주위사람들도 일단 그의 유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이유를 나는 그의 ‘유머’에서 발견한다. 


그의 유머화법의 특징은 남을 비하하고 비웃고 아프게 하고 약점을 헤집고 비밀을 누설하는 방식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속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화가 날 때도 있다. 주위사람들은 깔깔대고 웃지만 웃음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는 그게 아니다. 그가 웃기려는 의도를 갖고 던지는 농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웃어주지만 웃음을 터뜨리는 횟수에 비례하여 속에 앙금이 쌓인다. 


유머로 포장된 ‘말의 비수’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들은 그를 보고 ‘웃길 줄 아는 사람’으로 평가할지 몰라도 나는 결코 그를 유머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으로 포장된 독설가라는 표현이 오히려 근접된 평가라는 생각이다.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은밀히 충고한 적도 있지만 아직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말버릇을 고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왜냐면 말은 단순한 언어적 표현이 아니라 인품의 표현이고 사고방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버릇을 고치려면 단순히 화법을 고칠 것이 아니라 인품을 바꿔야 한다. 심보를 바꿔야 한다. 그러니 힘들 수밖에 없다.


그 사람만이 아니다. 주위에서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 중에 유심히 살펴보면 차라리 유머를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유머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유머가 유머다우려면 유머로서의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주위사람들을 웃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웃김으로서 정말 부정적 의미의 ‘웃기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유머경영》의 저자인 대런 라크루와는 “유머의 힘은 자석과도 같아서 긍정적인 유머는 끌어당기고, 부정적인 유머는 밀어낸다”고 하였다. 즉, 유머는 잘 사용하면 약이 되지만 잘 못 구사하면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유머는 익살스럽고 웃음을 자아내야 하지만 그 내용이 상대방의 아픈 곳을 찌르거나 난처한 입장에 빠트리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그 유머로 인하여 주위의 여러 사람이 폭소를 자아냈다하더라도 유머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 유머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유머나 농담을 할 때에 꼭 지켜야할 덕목의 으뜸은 사람을 공격하거나 폄하하거나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내용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식 유머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인간관계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입담이 좋고 우스갯소리를 잘 한다는 사람 중에 의외로 그런 유형의 사람이 많다. 당신은 과연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자. 앞으로 유머를 구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마음에 담아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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