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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관일 Sep 06. 2022

혁신하고 싶다고?
딱 하나만 바꿔라(18)

이것 하나도 혁신하지 못하면서

이것 하나도 혁신하지 못하면서     


은퇴예정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퇴직을 하고도 10여 년 이상을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니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70을 훌쩍 넘긴 나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강의를 하고 글을 쓴다. 그 동안 지은 책은 60권을 넘는다. 


책의 수준이 어떠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하고, 그 정도로 책을 많이 썼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궁리하며 보냈는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 있다. 4년여 전에 시작한 유튜브는 구독자가 21만 명을 넘어섰다. 이쯤 되면 나의 스토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강의 중에 퇴직예정자들에게 꼭 묻는 것이 있다. 지금쯤 퇴직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남자다. 앞으로 10여년이 지나면 여성의 비율도 꽤 되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러기에 남성을 대상으로 묻는다. “집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놀랬다. 강의 때마다 숫자를 확인하는데 5%내외가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100명의 청중이 있다면 다섯 명 정도가 손을 든다는 말이다. 그때마다 내가 일갈한다.

“퇴직 준비를 한다면서 아직까지 음식 만들 줄을 모릅니까? 이걸 명심하세요. 노후의 권력은 주방에서 나온다는 것을.”


청중들이 웃는다. 그러나 웃을 일이 아니다.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혁신이 별거냐? 지금까지와 다르게 행동하는 게 혁신이다. 좀 더 발전적으로 변하는 게 혁신이다. 당장 주방을 장악해야 한다. 그게 퇴직자의 혁신이다. 그 정도의 변화도 이루지 못하면서 노후가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허구다. 

심지어 “평생 돈을 벌어다 줬는데 퇴직한 후에 요리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퇴직 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주방의 권력부터 거머쥐라


“남자도 요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다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난다. 벌써 20년 전인 2001년 9월 11일의 일이다. 농협의 강원도 본부장으로 일하던 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가사도 함께, 농사도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농가남편 가사경연대회’를 연 것이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그때로서는 대단히 앞선 발상이었다. 


행사의 내용은 단순하지만 재미있었다. 각 시·군에서 선발된 농가 부부가 선수로 나오는데, 아내에 대한 애정표시에서부터 이불개기, 요리하기, 상차리기, 다림질하기 등 남편이 어떻게 가사를 돕고 있는지 경쟁을 시켜 포상하는 것이다. 

소문을 듣고 서울의 여러 TV방송사까지 몰려와 큰 관심을 보이며 행사의 열기를 돋웠다. 조금 과장을 하면 그 대회는 대한민국 남편들에게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건국 이래 최초의 이벤트였을 것이다. 흥행 대성공이 예감됐다. 


그런데, 아뿔싸! 그날 저녁, 전국의 주부들이 환호하는 뉴스가 될 것이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눈을 부릅뜨고 뉴스를 지켜보았지만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TV에는 전국 최초의 남편 가사경연대회가 아니라,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이 거듭해서 방영되고 있었다. ‘911테러’다.     


각설하고, OECD 국가 중 남편의 가사 분담률이 꼴찌라는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를 해주고 싶다. 가정의 화평과 부부간의 행복을 염원한다면 가장 먼저 가사부터 챙기라고. 주방의 권력부터 거머쥐라고.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 가사분담조차 실행하지 못하면서 ‘은퇴전략’과 ‘노후대책’을 논하는 것은 ‘말짱 황’이라고. 이런 게 혁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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