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나비를 그리다

조선후기 화가 남계우

by ANNE

조선의 화가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열심히 어릴 적 역사의 수업으로 기억을 회상해보면 김홍도와 신윤복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조선의 나비를 전문적으로 그린 화가 남계우를 소개하려고 한다.




"끝까지 간 풍류, 끝까지 간 미친짓, 게다가 타고난 성격은 향기를 좋아하네. 매일 무단히 꽃 아래 잠드니, 너는 전생에 방탕아였음을 알겠네."


각 나비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려 모은 군접도첩에 쓰인 말이다.

남계우가 직접 쓴 글로 추정되는데 원본은 아래 그림을 참고해주길 바란다.


1.조선, 나비 그림의 유행

나비는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기도 하고, 장수를 상징하기도 하여 조선에서는 부채나 병풍에 나비 그림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비 그림은 호접도, 군접도, 화접도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부채에 그려진 남계우의 화접도

특히 18세기 이후에 호접도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에서는 남계우 외에도 신명연이나 이교익, 백은배, 김석희, 서병건, 송수면, 이경승 등이 이 분야 그림을 남겼다.

이들 중에서도 남계우는 호접도의 일인자로 꼽혀서 ‘남나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렇다면 많은 다른 화가들 중에서 왜 남계우가 가장 손꼽히는 것일까?

이유는 좀 더 아래에서 소개하겠다.


2.남계우의 삶

1811년 서울의 남촌에서 출생한 남계우는 어릴 적부터 나비에 관심을 품었기에 나비를 잡아 표본을 만들거나, 책갈피에 끼워두었다고 한다.

때로는 나비를 수집해 유리병에 보관하기도 했는데, 얼마나 나비에 관심이 많았었는지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6살의 남계우는 어느 날 집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한다.

넋을 잃고 나비를 바라보던 남계우는 나비를 잡으려는 생각에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는 지금의 소공동에서 혜화동까지 나비를 쫓아 뛰어갔다. 그 거리가 10리가 넘었다고 하니, 4km가 넘는 거리를 달려갔다 온 것이다.



이토록 나비에 관심이 많았던 남계우는 호접도를 그릴 때 언제나 직접 보고 그림을 그렸다. 단순히 그림을 넘어서 그림에 그려진 나비의 이름, 별명, 특징까지 정리해두었다.

또한, 얼마나 그림이 세밀했는지, 남계우의 그림은 나비를 구분하는데 쓰일 정도이다.

근대기 생물학자 석주명은 남계우의 나비 그림을 근거로 한반도의 나비를 연구해 ‘조선산 접류 총목록’을 집필하기도 했다. 석주명은 “남나비의 그림이 나비에 관한 조선 고전 중에서 가장 과학적 가치가 많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석주명_세계적인 박물학자이자 우리나라의 나비학자. 한국 나비 75만마리를 정리했다.


이것이 남계우가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호접도를 잘 그리는 인물로 꼽힌 이유일 것이다.


남계우는 5위의 군사를 관리하는 오위장 12명 중 한 명이었다. 오위장에서 군사를 관리하다가 이후에는 돈녕부의 도정을 지냈다. 기록을 찾아보면 73세 즈음부터 돈녕부에서 일한 것으로 보인다. 돈녕부에서 남계우는 왕실 친척의 사무를 담당하는 업무를 담당했고 별 탈 없이 관직을 지내다가 1886년 76세의 나이에는 병으로 일하기 어려워져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실력이 뛰어나기에 당연히 화백일 줄 알았지만 의외로 남계우의 직업과 취미는 별개였던 것 같다. 다만 도교에 관심이 많고, 관직이나 재물에 욕심이 없어 나비 그림에 꾸준히 전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생을 서울 남촌에서 살던 남계우는 청송심씨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남계우의 아들들도 나비 그림을 잘 그렸다고 전해지며, 남계우는 80세까지 장수하다 세상을 떠난다. 누군가는 평생을 호접도에 헌신한 남계우에게 장수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말한다.



3.남계우의 나비 그림

남계우의 호접도는 지금까지도 많이 전해져오고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1.선면병풍(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0가지의 그림이 이어진 이 병풍 속엔 나비가 무려 150마리나 있다고 한다.이 병풍은 박기준 화원의 그림이 섞여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이 그림에 나비가 150마리라니!

그리는데 힘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군접도첩

나비의 종류별로 그린 군접도. 군접도를 모아 군접도첩이라 한다.



그림에 들인 수많은 노력을 보면 정말 나비에 미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밌게도 군접도첩의 맨 끝에는 남계우가 직접 쓴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다.


해석하면 아래의 글이 된다.

끝까지 간 풍류, 끝까지 간 미친짓, 게다가 타고난 성격은 향기를 좋아하네. 매일 무단히 꽃 아래 잠드니, 너는 전생에 방탕아였음을 알겠네.


도교에 관심있던 남계우의 특성을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생각한다. 꽃과 나비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의 이유도 위 문장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3.화접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세 부분으로 나뉘어, 맨 위는 글, 중간은 나비, 밑은 꽃으로 장식하는 것이 남계우의 특징이다.

남계우는 화려한 채색과 정밀한 묘사로 유명한데, 그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또한 종이에 있는 금박지는 마치 꽃가루가 흩날리는 듯한 효과를 주는데, 당시에 굉장히 비싼 고급종이였다고 한다.




4.석화접도대련

남계우의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기암괴석이 많다는 것이다.

나비와 독특한 모양의 바위는 남계우의 그림에서 거의 대부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5.누각산수도

남계우의 누각산수도. 바위를 잘 표현한 남계우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남계우는 산수화도 그렸다. <누각산수도>가 그 예인데, 정말 그림에 있어서 팔방미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비 그림 뿐 아니라 풍경도 잘 그리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설명 없이 그림만 보이려한다.

지금까지 조선의 제일가는 호접화가, 남계우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