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시인 허초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본 적이 있다면 아래 장면을 기억할 수 있겠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나온 위 글의 원작은 아래의 시이다.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네
임을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 동안 부끄러웠네
이 시는 ‘연밥따기 노래’ 혹은 ‘채련곡’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연꽃의 열매인 연밥을 던져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했다.
위 시 속 화자는 연모하는 이에게 연밥을 던져 마음을 고백하지만,
그 모습을 남에게 들켜 쑥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사랑에 서툰 소녀가 떠오르는 시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이의 본명은 허초희.
‘연밥따기 노래’의 원작자이다.
누군가는 허옥혜라고 부르기도 했고, 누군가는 경번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많이들 그녀를 ‘허난설헌’이라 불렀다.
1563년에 강릉에서 태어난 허초희는 6남매 중 셋째딸이었다.
허초희의 아버지인 허엽은 비교적 열린 시야를 가졌던 것 같다.
조선 후기에는 보통 딸에게 이름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나, 허초희는 이름도 받았으며
남동생 허균과 함께 수업을 받았다고 전해지니 말이다.
허초희는 첫째 오라버니 허성과 15살 차이이며 둘째 오라버니 허봉과 12살 차이이다.
그렇기에 자주 보지 못하는 아버지보다 두 오라버니를 더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둘째 오라버니 허봉은 어릴 적부터 허초희의 재능을 알아보고 독려했다고 전해지며
허초희와 가장 각별하게 지냈다고 알려졌다.
허봉은 조선 후기 시인 이달에게 그녀와 남동생 허균의 수업을 맡겼다.
이달은 허초희와 허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허균에게 미친 영향
이달은 능력은 출중했으나 서자여서 정계에 나가지 못했다.
능력은 출중했으나 서자여서 정계에 나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며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은
허균이 이달을 모티브로 삼아 쓴 것으로 추측한다.
- 허초희에게 미친 영향
이달은 또한 도교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허초희에게 영향을 주었다.
1570년 선조 3년, 즉 허초희가 8살이 되는 해에 지은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이라는 시를 읽어보면 도교적 사상이 묻어나오는 듯하다.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어기여차 떡 던져라. 동쪽 보니
새벽에 신선이 봉황을 타고 궁에 들어가네
아침해가 부상의 아래에서 떠오르니
만 갈래의 붉은 빛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네.
어기여차 떡 던져라. 남쪽 보니
옥룡이 한가로이 구슬연못의 물을 마시는구나.
은침상서 잠을 깨자 꽃 그늘진 한낮인데
웃으면서 여자노비 불러 푸른 적삼을 벗네.
어기여차 떡 던져라. 서쪽 보니
푸른꽃은 떨어지고 오색빛깔 난새 우는구나
비단에다가 글을 써보내 신선여왕을 초청하고
학을 타고 돌아오니 이미 날이 저물었네
어기여차 떡 던져라. 북쪽 보니
바닷물이 아득하여 북두칠성이 잠겼구나
대붕새가 하늘을 박차올라 바람 일으키니
구천 하늘 먹구름이 뒤덮여 깜깜하네.
어기여차 떡 던져라. 위쪽 보니
새벽빛 희미하여 비단구름 드리웠네
백옥 침상 위에서 신선 꿈을 꾸다 깨어나서는
북두칠성 자루 도는 소리 누워서 듣는구나
어기여차 떡 던져라. 아래쪽 보니
온세상이 구름에 덮여 어두운 밤이구나
계집종이 와서 수정 주렴 차다고 말하는데
새벽 서리 원앙의 기와에 맺혔구나
삼가 바라건데, 집의 마룻대를 다 올린 뒤에 구슬꽃은 늙지 않게,
구슬풀은 사시사철 꽃다워지게 하소서.
해와 달은 빛이 시들어도 난여를 몰아 오히려 놀고,
육지와 바다는 색이 변해도 바람 수레를 몰아 오히려 남아 있게 하소서.
노을 위의 은빛 창문에서 구만 리 희미한 세상을 내려다보고, 바닷가 문에서 삼천 년 상전벽해를 웃으며 보게 하소서. 손으로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고, 몸은 바람과 이슬 속을 노닐게 하소서.
이 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래의 구절이다.
노을 위의 은빛 창문에서 구만 리 희미한 세상을 내려다보고, 바닷가 문에서 삼천 년 상전벽해를 웃으며 보게 하소서. 손으로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고, 몸은 바람과 이슬 속을 노닐게 하소서.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을 읽어보면 신선, 봉황 같은 단어들이 허초희의 도교적 색채를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8살짜리 여자아이가 어떻게 이런 시를 지었을까하는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1577년 선조 10년, 15살의 허초희는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혼인한다.
아래는 혼인하기 전 지은 허초희의 ‘숙자수궁증여관’이라는 시이다.
숙자수궁증여관
춤추고 노래함은 막수가 으뜸,
열다섯 살에 부펑후에게 시집갔네.
싫도록 거문고 안고서 집에서 뜯다가,
즐겁게 화관쓰고 천제께 예절 닦네.
달밝은 밤 퉁소불면 봉황이 날아오고,
비단창가 구름 흩어지니 사랑도 거두네.
아침 저녁 빈 제단에 향불 피우니,
학옷 뒤 찬바람은 가을 몰고 온다네
이 시에서 나오는 막수는 15세에 시집가 아이를 낳고 부귀를 누렸으며 노래를 잘했다고 전해지는 옛 인물로 허초희는 김성립에게 시집가는 자신을 막수에 비유했다.
하지만 혼인 이후 허초희의 삶은 막수처럼 행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허초희의 남편 김성립은 기생집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김성립의 친구들이 허초희를 찾아와 이 사실을 알리자 그녀는
'낭군께선 다른 마음 없으신데, 같이 공부하는 이는 어찌된 사람 이길레 이간질을 시키는가.‘
라고 말하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은 많이 썩었나 보다.
아래의 시 ’규원가‘를 쓴 것을 보면 말이다.
규원가
엊그제 젊었더니 어찌 벌써 이렇게 다 늙어 버렸는가? / 어릴 적 즐겁게 지내던 일을 생각하니 말해야 헛되구나. / 이렇게 늙은 뒤에 서러운 사연 말하자니 목이 멘다. 부모님이 낳아 기르며 몹시 고생하여 이 내 몸 길러낼 때, / 높은 벼슬아치의 배필은 바라지 못할지라도 군자의 좋은 짝이 되기를 바랐더니, / 전생에 지은 원망스러운 업보요, 부부의 인연으로 / 장안의 호탕하면서도 경박한 사람을 꿈같이 만나, 시집간 뒤에 남편 시중들면서 조심하기를 마치 살얼음 디디는 듯하였다. 열다섯, 열여섯 살을 겨우 지나 타고난 아름다운 모습 저절로 나타나니, / 이 얼굴 이 태도로 평생을 약속하였더니, / 세월이 빨리 지나고 조물주마저 다 시기하여 / 봄바람 가을 물, 곧 세월이 베틀의 베올 사이에 북이 지나가듯 빨리 지나가 /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 어디 두고 모습이 밉게도 되었구나. / 내 얼굴을 내가 보고 알거니와 어느 님이 나를 사랑할 것인가? / 스스로 부끄러워하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여러 사람이 떼를 지어 다니는 술집에 새 기생이 나타났다는 말인가? / 꽃 피고 날 저물 때 정처 없이 나가서 / 호사스러운 행장을 하고 어디어디 머물러 노는가? / 집 안에만 있어서 원근 지리를 모르는데 임의 소식이야 더욱 알 수 있으랴. / 겉으로는 인연을 끊었다지만 임에 대한 생각이야 없을 것인가? / 임의 얼굴을 못 보니 그립기나 말았으면 좋으련만, / 하루가 길기도 길구나. 한 달 곧 서른 날이 지루하다. 규방 앞에 심은 매화 몇 번이나 피었다 졌는가? 겨울밤 차고 찬 때는 진눈깨비 섞어 내리고, / 여름날 길고 긴 때 궂은 비는 무슨 일인가? / 봄날 온갖 꽃 피고 버들잎이 돋아나는 좋은 시절에 아름다운 경치를 보아도 아무 생각이 없다. / 가을 달빛이 방 안에 비추어 들어오고 귀뚜라미 침상에서 울 때 / 긴 한숨 흘리는 눈물 헛되이 생각만 많다. / 아마도 모진 목숨 죽기도 어렵구나. 돌이켜 여러 가지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니 이렇게 살아서 어찌할 것인가? / 등불을 돌려 놓고 푸른 거문고를 비스듬히 안아 /벽련화곡을 시름에 싸여 타니, / 소상강 밤비에 댓잎 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 / 망주석에 천 년 만에 찾아온 특별한 학이 울고있는 듯, 아름다운 손으로 타는 솜씨는 옛 가락이 아직 남아 있지마는, / 연꽃 무늬가 있는 휘장을 친 방이 텅 비었으니 누구의 귀에 들릴 것인가? / 구곡 간장이 끊어지는 듯 슬프다. 차라리 잠이 들어 꿈에나 임을 보려 하니, / 바람에 지는 잎과 풀 속에서 우는 벌레는 무슨 일이 원수가 되어 잠마저 깨우는가? /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을지라도, / 칠월 칠석 일 년에 한 번씩 때를 어기지 않고 만나는데, / 우리 임 가신 후는 무슨 장애물이 가리었기에 / 오고 가는 소식마저 그쳤는가? / 난간에 기대어 서서 임 가신 데를 바라보니, / 풀 이슬은 맺혀 있고 저녁 구름이 지나갈 때 / 대 수풀 우거진 푸른 곳에 새소리가 더욱 서럽다. / 세상에 서러운 사람 많다고 하겠지만 / 운명이 기구한 젊은 여자야 나 같은 이 또 있을까? / 아마도 임의 탓으로 살 듯 말 듯 하구나.
높은 벼슬아치의 배필은 바라지 못할지라도 군자의 좋은 짝이 되기를 바랐더니, 전생에 지은 원망스러운 업보요........
시집간 뒤에 남편 시중들면서 조심하길 마치 살얼음 디디는 듯하였다.
-규원가中-
남편으로 인한 속앓이도 있었지만, 17살에는 딸을 잃고 18살에는 아들 희윤까지 잃었다.
허초희의 시 <곡자>는 임신 중이던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들의 무덤을 바라보며 지었다고 전해진다.
곡자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하나 남은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마주 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너의 무덤 위에다 술잔을 붓노라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생전처럼 밤마다 정겹게 놀고 있겠지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잘 자라기를 바라리오.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피눈물 울음을 속으로 삼키네.
자식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 와닿게 만드는 시이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만큼 아픈 또 다른 슬픔이 허초희를 찾아왔다.
아들을 잃은 같은 해에 아버지 허엽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허초희는 친밀했던 둘째 오라버니인 허봉에게 더욱 의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1583년 선조 16년, 허초희가 21살일 무렵, 둘째 오빠 허봉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이를 탄핵하여 유배를 갔다가 5년 뒤 금강산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허초희는 26살에 6남매 중 자신과 가장 각별했던 오라버니를 떠나 보내야만 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연달아 찾아온 것이다.
아래는 허초희가 둘째 오라버니인 허봉을 위해 지은 두 개의 시이다.
갑산으로 귀양가는 허봉 오라버니께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여
함경도 가느라고 마음 더욱 바쁘시네.
쫓겨나는 신하야 가의 태부시지만
임금이야 어찌 초나라 회왕이시랴.
가을비낀 언덕엔 강물이 찰랑이고
변방의 구름은 저녁노을 물드는데,
서리바람 받으며 (6마리의) 기러기떼 울며 날아가는데
(둘째 기러기는) 걸음이 멎어진 채 차마 길을 못가시네.
이 시에서 가의 태부는 직언을 하다 유배된 충신, 즉 허봉 오라버니를 의미하며
6마리의 기러기 떼는 허초희의 6남매를 의미한다.
혹시 하늘에 V자로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본 적이 있는가?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떼 중 한 기러기가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 떨어지는 기러기가 둘째 허봉 오라버니를 의미한다.
하곡 오라버니께
어두운 창가에 촛불 나직이 흔들리고
반딧불은 높은 지붕을 날아서 넘네요.
깊은 밤 시름겨워 더욱 쌀쌀한데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져 흩날리네요.
산과 물이 가로막혀 소식도 뜸한니
그지없는 이 시름을 풀 길이 없네요.
청련궁 오라버니를 멀리서 그리노라니
산속엔 담쟁이 사이로 달빛만 밝네요.
청련궁은 옛 이태백의 유배지로, 청련궁 오라버니는 유배간 둘째 허봉 오라버니를 상징한다.
26살에 둘째 오라버니를 잃은 충격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별다른 지병 없이 지내던 허초희는 둘째 오라버니를 잃고 1년 뒤인 27살에 어떤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꿈 속 장면을 묘사하여 아래의 시를 남기고는, 얼마 뒤...
몽유광상산시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무지갯빛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은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한번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아주 맑고도 깊은 푸른 바다에 붉디 붉은 연꽃 27송이가 떨어지는데 차가운 달빛만이 이를 비추는 모습을.
쓸쓸하지 않은가?
시에서 바다에 떨어진 붉은 연꽃 27송이는 허초희 자신을 예언하는 듯하다.
시를 남긴 후 얼마 뒤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기 때문이다.
사인은 미상이었다.
이후 남편 김성립은 병과로 급제한 뒤 남양홍씨와 재혼을 했지만, 임진왜란 때 전사했다.
동생 허균은 친정에 있던 허초희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정유재란 때 원정 나온 오명제에게 허초희의 시 200여편을 전해주는데, 이 시들이 명나라 저서 《조선시선》, 《열조시선》 등에 실렸다.
또한, 허초희의 시들을 모아 중국에서 『난설헌집』을 냈는데, 그 명성은 당시 『난설헌집』이 너무 잘 팔리니, 종이가 부족하여서 중국의 종잇값이 올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난설헌의 시는 속된 세상 바깥에 있는 것 같다. 그 시구는 모두 주옥같고 그 형제들은 동국의 귀중한 존재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허난설헌이라는 이름은 참 많이 들어보았지만 직접 시를 읽어보니 그 지금까지도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더 오래 살아있었더라면 아름다운 시들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앞쪽에서 소개한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기억하는가?
허초희의 시에는 자신의 삶을 반영한 시도 있지만, 도교적 색체의 시가 매우 매우 많다.
‘유선사’라는 시만 해도 87편이나 있을 정도이다.
아래는 '신선세계를 바라보며 노래하다'라는 뜻의 ‘망선요’라는 시이다.
망선요
구슬 꽃 산들바람 속에 파랑새 날아오르니,
신선들의 여왕이 기린 수레 타고 봉래섬 향하네.
난초 깃발, 꽃술 장막, 하얀 봉황 수레,
웃으며 벽에 기대 아름다운 풀 뜯네.
하늘 바람 불어와 푸른 무지개 빛깔 치마 날리고,
옥고리와 옥노리개 부딪쳐 쟁그랑 소리 나네.
하얀 달나라 선녀 짝을 지어 비파 연주하고,
일 년에 세 번 꽃피는 나무엔 봄 구름 향기롭네.
동틀 무렵 신선들의 잔치 끝나니,
짙푸른 바다의 푸른 빛깔 옷을 입은 동자는 하얀 학에 올라타네.
자주색 피리소리 고운 빛 아침노을 꿰뚫어 흩뜨리고,
이슬 젖은 은하 속으로 새벽 별 떨어지네.
짙푸른 바다의 푸른 빛깔 옷을 입은 동자는 하얀 학에 올라타네.
자주색 피리소리 고운 빛 아침노을 꿰뚫어 흩뜨리고,
이슬 젖은 은하 속으로 새벽별 떨어지네.
-망선요中-
위 글은 색을 묘사하는 시어들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구절이라
개인적으로 '망선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허초희에겐 망선요 외에도 수많은 도교적 시들이 있지만,
도교를 잘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생략하도록 한다.
소상강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순임금의 왕비인 아황과 여영이 순임금을 따라 몸을 던져 죽은 곳이 소상강이라는 전설이다.
이 전설을 듣고 허초희는 ‘소상강 거문고 노래’라는 시를 짓는다.
소상강 거문고 노래
파초꽃 상강곡에 눈물 적시고
먼 지평선 밖 가을 연기 아련히 피어오르네.
차가운 파도 이는 수부엔 용이 밤에 울어대고
오랑캐 아가씨 딸그랑 딸그랑 영롱한 구슬 굴리네.
짝 잃은 난새와 봉황은 창오산에 가려지고,
비는 강물에 스며들며 새벽 이슬 아스라해.
석벽 위에 신령이 거문고를 고즈넉히 타고,
아름답게 틀어올려 쪽진 자매 소상강(湘江)에서 울고 있네.
맑고 고운 하늘로 은하수 아득히 간 곳 없이 사라지면
우개와 금지 오색구름에 잠겨드네.
문 밖엔 어부가 사랑노래 부르는데,
은빛 물 위엔 임 그리는 달 반쯤 걸렸구나.
시에서 오랑캐 아가씨, 쪽진 자매가 순임금의 왕비인 아황과 여영을 뜻한다.
은빛 물 위엔 임 그리는 달 반쯤 걸렸구나.
-소상강거문고노래中-
아래는 허초희가 사계절을 주제로 지은 시들이다.
봄
뒤 뜰에는 그윽한 살구꽃 비 내리고
날아다니는 앵무새 울음 목련 둑에 걸린다
흐르는 비단 장막으론 찬 봄바람 스며들고
박산향로 가벼운 바람은 한 줄기로 하늘거리네
미인은 잠을 깨어 새로이 단장하는데
향그러운 비단 허리띠는 원앙이 그려있네
비스듬히 주렴 걷고 비취 이불 개어두니
힘없이 은쟁 안고 봉황을 타는구나
금 굴레 안장에 새기고 어디로 가셨는지
정많은 앵무새만 창가에서 속삭이네
풀섶에서 날던 나비 뜨락으로 사라지니
꽃에 서린 아지랑이 난간 밖에 춤 추누나.
뉘 집 연못에서 피리소리 목 메이고
달이 비췬 좋은 술은 금 술잔에 힘겨운가
수심이 많은 이는 밤에 홀로 잠 못 들고
새벽에 일어나니 붉은 눈물 그득하네
여름
느티나무의 그늘은 뜰에 깔리고 꽃그늘은 어두운데
대자리와 평상에 구슬 같은 집이 탁 틔었다
새하얀 모시적삼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부채를 부치니 비단 장막이 흔들린다
계단의 석류꽃 피었다가 모두 다 지고
햇빛이 추녀에 옮겨져 발 그림자 비꼈네
대들보의 제비는 한낮이라 새끼 끌고
약초밭 울타리엔 인적 없어 벌이 모였네
수 놓다가 지쳐 낮잠이 거듭 밀려와
꽃방석에 쓰러져 봉황비녀 떨구었다
이마 위의 땀방울은 잠을 잔 흔적
꾀꼬리 소리는 강남 꿈을 깨워 일으키네
남쪽 연못의 벗들은 목란배 타고서
한 아름 연꽃 꺾어 나룻가로 돌아온다
천천히 노를 저어 연밥따기 노래 부르니
물결 사이로 쌍쌍이 흰 갈매기는 놀라날으네
가을
비단 장막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고 새벽은 멀었지만
텅빈 뜨락에 이슬 내려 구슬 병풍은 더욱 차갑다
못 위의 연꽃은 시들어도 밤까지 향기 여전하고
우물가의 오동잎은 떨어져 그림자 없는 가을
물시계 소리만 똑딱똑딱 서풍 타고 울리는데
발 밖에는 서리 내려 밤 벌레만 시끄럽구나
베틀에 감긴 옷감 가위로 잘라낸 뒤
임 그리는 꿈을 깨니 비단 장막은 허전하다
먼 길 나그네에게 부치려고 임의 옷을 재단하니
쓸쓸한 등불이 어두운 밤을 밝힐 뿐
울음을 삼키며 편지 한장 써놓았는데
내일 아침 남쪽 동네로 전해 준다네
옷과 편지 봉하고 뜨락에 나서니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별만 밝네
차디찬 금침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룰때
지는 달이 정답게 내 방을 엿보네
겨울
구리병 물소리 소리에 찬 밤은 기나길고
휘장에 달 비치나 원앙금침이 싸늘하다
궁궐 까마귀는 두레박 소리에 놀라 흩어지고
동이 터오자 다락 창에 그림자 어리네
발 앞에 시비가 길어온 금병에 물 쏟으니
대야의 찬물 껄끄러워도 분내는 향기롭다
손들어 호호 불며 봄산을 그리는데
새장 앵무새만은 새벽 서리를 싫어하네
남쪽 내 벗들이 웃으며 서로 말하길
고운 얼굴이 임 생각에 반쯤 여위었는걸
숯불 지핀 화로가 생황을 덮일 때
장막 밑에 둔 고아주를 봄술로 바치련다
난간에 기대어 문득 변방의 임 그리니
말타고 창 들며 청해 물가를 달리겠지
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가죽옷 닳아졌을테고
아마도 향그런 안방 생각하는 눈물에 수건 적시리라
개인적으로 허초희가 지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봄이라는 시를 가장 좋아한다.
풀섶에서 날던 나비 뜨락으로 사라지니 꽃에 서린 아지랑이 난간 밖에 춤 추누나.
-봄中-
마지막 시는 ‘역양산 오동나무’이다.
이 시는 왠지 허초희의 삶이 생각나는 듯해 가져와봤다.
역양산 오동나무
추운 그늘 속에 수 많은 세월 견디어왔네
다행히 뛰어난 장인을 만나
소리 좋은 거문고가 되었네
마음을 다해 한 곡조 탔건마는
온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네
이래서 광릉산의 거문고 곡조
천고의 소리는 묻혀 사라졌다네
이 외에도 허초희는 많은 시들을 남겼다.
더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허난설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448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