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에선 그렇게 시작했지만, 지렁이를 단지 ‘흙 속 생물’쯤으로만 여겼던 내게
그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였다.
지렁이는 그저 흙을 파는 게 아니라, 그 흙을 숨 쉬게 만들고, 썩은 유기물을 먹어
다시 생명의 순환 안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그 흔적은 식물이 잘 자라는 건강한 땅으로 남는다.
이 작은 생명체는 매일 토양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거다.
장마철엔 지렁이가 자주 보인다.
그런 지렁이를 보고 우리는 징그럽다며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하지만 지렁이가 있다는 건, 그 땅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지렁이는 오염된 땅에선 살지 못한다.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가 많은 땅에선 지렁이도, 그 외 어떤 생명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영국 마을에선 매년 6월이면 ‘지렁이 유혹하기 대회’가 열린다.
제한 시간 30분 안에 땅속 지렁이를 가장 많이 유인해내는 대회.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진동을 주면 지렁이가 놀라 밖으로 나온다는 생태적 습성을 이용한 행사다.
그날 모은 지렁이들은 모두 다시 땅으로 돌려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8l-m-mdWZSw
언제부턴가 우리는 지렁이를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징그럽고 불편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땅 아래서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지렁이야말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을 건강하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다.
장마철, 비 내리는 날.
지렁일 만난다면 한 번쯤 이렇게 말 걸어보면 어떨까.
"안녕, 지렁아~ 네 덕분에 땅이 숨 쉬고 있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