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한 주 결방되면서 일주일이란 뜻밖의 여유가 생긴 날.
나는 가족들과 함께 발리로 떠났다.
발리는 9년 전, 남편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는 단순했다. 둘만 생각하면 됐고, 숙소도 식사도 대충 감으로 선택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여행은 더 이상 '쉼'이 아니었다.
짐을 싸고, 아이 챙기고, 밥 먹이고, 재우고...
모든 게 노동의 연장처럼 느껴졌었다.
아이들이 어느 덧 자라서 예전처럼 손이 많이 가진 않아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신경 쓰고 챙겨야 하는 건 여전히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는 건, 잠시나마 일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다시 찾은 발리.
9년 전과 모든 게 달라진 것 같은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왠지 모를 자유로움이 밀려왔다.
사람들의 여유.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걷는 시간.
아이들과 망고 주스를 나눠 마시며 웃는 그 순간.
해가 질 무렵의 바람까지.
모든 게 아름답고,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려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어느 저녁,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노부부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부부도 젊은 시절엔 나처럼 아이를 키우고, 일하고, 치열하게 살았을까?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방송작가로, 아내로, 엄마로, 딸로 여러 역할을 오가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다 문득, 나도 언젠가는 이 많은 역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 근심 없이 아침을 맞이하고,
누구의 스케줄도 아닌 나의 시간에 따라 하루를 살아가는 삶.
커피 한 잔으로 충분한 하루.
그런 하루가 나에게도 찾아올까...
발리의 바람이 시원하게 불던 그 저녁,
나는 '머지 않아 올 나의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겁이 나고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고 싶었던 시간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보다 용기를 택했던 그 날의 나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