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의 생각없는 생각

by 틈하나

두렵다. 사실 매번 두렵고 어렵다.
그럼에도 버텨내고 싶은 건, 그저 성실함으로만 나를 증명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만큼 해왔으니 다음엔 더 잘해야 한다는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시 잡는다.
완벽한 결과로 나를 확인시키려는 시간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길 속에서 불안했지만 시작할 수 있었던 순간.
수많은 변수 앞에서 묵묵히 준비하고 버텼던 시간.
그 안에서 내 안의 즉흥성이 얼마나 자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믿고 싶다.

내가 성장했던 시간은 단단해서 무언가 더는 필요하지 않던 더없이 야무지던 시절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두드렸던 한없이 작은 새 같던 시절이었다.
— 『료의 생각 없는 생각』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건,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경험과 감정이 쌓여 그 문장과 겹쳐지기 때문일까.


‘왜 우리는 이렇게나 진짜의 나로 가는 길에 용기까지 필요하게 된 걸까?’

내가 나로 태어나 내가 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를 자주 생각하던 제가 모여 이 책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료'


런던베이글뮤지엄 대표 료의 책 『생각 없는 생각』을 읽다가 나는 얼마나 나로 살아왔는지,

또 얼마나 그러지 못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우리는 진짜의 나로 가는 길에 용기까지 필요한 걸까?”
그녀의 물음은 곧 내 물음이기도 했다.
나는 나로 태어났는데, 왜 온전히 나로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걸까.
무엇이 나를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살게 하는 걸까.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일을 하며 나답게 사는 건 이기적이라 여겼다.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당연한 일이라 믿었고

최선을 다해 앞으로 달려야만 옳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그래서 휴식은 사치였고

아이들 없이 혼자만 누리는 시간은 언제나 먼 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하는 사이,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미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언제든 주변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가족이어서. 그저 오랜 친구여서.
그저 돈을 벌어야 하는 수단이기 때문에라는 각자의 절절한 이유에
나를 무심히 내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에 그저 순응하는 삶에 자신을 몰아넣고,
그 와중에 옳게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앞서
자기답게 사는 법을 찾아내려는 건, 출구 없는 방들에서 탈출하기 위한,
더없이 처절한 게임임에 틀림없다.
나로 태어나, 내가 원하고 바라는 삶을, 타인을 해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미안해하지 않기를, 좀 더 나 자신으로 능동적이기를 스스로에게 바라는 시간.
대체적으로 부끄럽지 않다면, 자신을 믿고 파장에 몸을 맡겨봐.
— 『료의 생각 없는 생각』


나답게 사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나로 태어난 나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면 결국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나답게 살 용기를 내는 건
결국 나와 관계 맺는 모든 사람에게도 필요한 용기라는 것.

그래서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로 살아가야 할까.
그리고 당신은, 지금의 당신으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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