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고등학교 절친을 만났다. 서른 해가 넘는 인연이지만, 여전히 편한 친구다. 다만 어릴 때부터 우리는 조금 달랐다. 그 친구는 굉장히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나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딸이었다. 그땐 그 차이를 잘 몰랐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고, 같은 꿈을 꾸던 시절이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며 다시 마주 앉으니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간극이 분명히 보였다.
그 친구는 여전히 여유롭고, 생각이 앞서고, 만나는 사람의 결이 달랐다. 그리고 그 여유는 세대를 건너 자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친구의 딸은 내 딸과 같은 초6. 이번에 제주 국제학교에 들어간다고 했다. 한국 식 입시는 자신의 아이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국제학교를 선택했다고 했다. 연 1억이 드는 학비를 감당하면서. 나는 웃으며 “와, 대단하다” 했지만, 속으로는 말문이 막혔다.
부럽다기보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낯선 막막함이 밀려왔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일을 놓지 않았고, 아이를 키우며 버텼고,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그 친구를 보고 나니 내가 쌓아온 모든 게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의 대화는 언제나 ‘앞’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의 진로, 미래의 설계, 돈을 대하는 방식까지. 나는 그저 지금을 지키는 데 익숙했고, 그 친구는 이미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주는 잠시야. 나중엔 미국으로 보낼 거야.”라고 말할 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미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는 걸. 예전엔 ‘돈이 다는 아니야’라고 쉽게 말했지만 이젠 안다. 돈은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 자유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바꾼다. 만나는 사람, 경험의 깊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까지. 그 친구는 풍요 속에서 세상을 넓게 본 사람이고, 나는 결핍 속에서 단단해진 사람이다. 둘 다 옳지만, 결은 다르다. 그리고 그 결의 차이가 이제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혼자 생각했다. “우리 아이 세대엔, 이 격차가 좀 줄어들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겠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다른 공기를 마시고, 다른 풍경 속에서 자라니까. 그걸 인정하니 서글펐다. 마치 내 아이의 가능성에 한계를 긋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돈도, 인맥도, 세련된 비전도 부족한 나 같은 부모는 어쩌면 아이의 세상을 좁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살아내는 법’을 배웠다. 없는 속에서 있는 걸 찾는 법,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 스스로를 위로하며 앞으로 가는 법.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였다. 하지만 세상은 이제 ‘근성’보다 ‘기획력’을. ‘인내’보다 ‘방향’을 요구한다. 그 친구는 아이에게 세상을 ‘먼저 보여주는’ 부모고, 나는 아이와 함께 ‘같이 배워가는’ 부모다. 그 차이가 때로는 벽처럼 느껴진다.
며칠 전, 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왜 계속 일을 해? 일이 그렇게 좋아?"
나는 대답했다.
"엄마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계속 배워야 하니까~"
그러자 딸이 말했다.
"그래? 엄마 나이에도 계속 배워야 된다고? 음~ 쉽지않네~"
그 말에 웃음이 났다. 그래, 쉽지 않지. 그럼에도 나는 배워야 한다. 그래야 아이에게 뭐라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알려줄 수 있으니까. 세상이 무섭고 불안해도 멈추지 않고 배우는 사람의 뒷모습을. 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정답을 주진 못하지만 살아가는 태도를 알려줄 순 있다. 완벽하진 않아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모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 음... 쓰고 보니 이 또한 쉽지 않겠다 싶다. 현실은 늘 녹록치 않고 마음은 흔들리게 마련이니까.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아이마다 출발선이 다르다. 나는 그걸 바꿀 힘은 없다. 다만 내가 아는 만큼, 버는 만큼, 아껴둔 만큼 조용히 내 아이의 길을 만들어갈 뿐이다. 그게 현실이고 지금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