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나고 맞은 등원 첫날.
아침 8시에 눈을 뜬 딸의 첫마디.
"오늘 뭐 입지?"
매일 아침마다 같은 질문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이렇게 입어봐~" 하고 옷을 내밀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별로!"
결국 반팔 티셔츠에 후드 가디건, 추리닝 바지를 꺼내 입는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10분은 서성이다가,
마지막에 고르는 건 늘 똑같다.
그럴 거면서 왜 묻는 건데?
더 웃긴 건,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말한다.
"엄마, 내일은 뭐 입지?"
이쯤 되면 옷이 문제가 아니라,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루틴인 것 같다.
내 눈에는 어제랑 오늘이 똑같은데,
딸 눈에는 그 미세한 차이가 세상 가장 중요한 문제인 모양이다.
최근 들어 딸은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나는 코가 별로야~"라며 투덜대고,
예전처럼 대충 머리 묶고 물만 묻히고 뛰쳐나가던 모습은 사라졌다.
머리에 에센스를 바르고 정성스레 빗질까지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딸의 행동 하나하나가 낯설면서도, 어쩐지 익숙하다.
사춘기 소녀들의 공식 코스라면, 우리 집도 이제 그 길목에 들어선 거겠지.
아니면... 짝남 때문?
이제 키도 거의 나를 따라잡았다.
초3 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 게 좋겠다고 했던 의사 선생님이
"159cm 정도 예상된다"고 했었는데, 벌써 그 키를 넘어섰다.
그때 주사 안 맞길 잘했네, 싶으면서도
쑥쑥 자라는 딸을 보며 ‘이제 정말 어린 애가 아니구나’ 실감한다.
자고 나면 쑥 커져있는 키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대화의 방식이다.
내 잔소리엔 더 강한 말로 받아치고,
내가 상냥하게 말하면 "왜 그래?" 하며 의심 섞인 눈빛을 보낸다.
도무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는 엄마와 딸의 대화.
전혀 티키타카가 되질 않는 대화. 좀처럼 이어지질 않는 대화.
그럼에도 나는 계속 말을 걸고, 딸은 왜? 뭐? 그래서? 단답으로 응수한다.
언제쯤 딸과 그럴싸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하루 일과를 풀어내듯, 친구 얘기도, 속마음도 술술 들려주던 시절은 사라진 걸까?
아니면 다시 돌아올까?
어쨌든 오늘 딸은 학교에 갔고,
짝남을 봤을 테고, 역시나 고백은 못 했을 거다.
곧 중학생이 되면 여중에 진학하게 되니, 아마 그 짝남과는 이제 못 보게 되겠지.
벌써 무슨 이성 친구냐 싶으면서도,
짝사랑 앞에서 두근거리는 딸을 응원하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인 걸까.
내가 경험했던 서툰 설렘들을 이제 딸이 겪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걱정되면서도 괜히 웃음이 난다.
"짝남이든 뭐든... 좋아도 해보고 상처도 받아보고... 그렇게 크는 거지 뭐...
근데 엄마 말도 가끔은 좀 들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