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자는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 민법 제915조(폐지)
2021년 1월 민법 제915 조항 부모의 ‘징계권’이 폐지되었다. 1958년에 제정된 이후 62년 만이다. 그러나 여전히 체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법이 모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고, 학대를 정당화하는 모든 불씨를 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60.7%는 여전히 체벌이 필요하다고도 답한다.
3040세대 부모들 중 많은 수가 체벌을 목적으로 맞아본 경험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맞아서 잘 컸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여전히 기억 속 모든 장면마다 분노한다. ‘규칙이나 약속이 존재했던’ 상황 중에는 상대적으로 분노가 덜한 기억들도 있다. 그렇다면 약속이 존재하는 체벌은 모두 타당한 것일까? ‘숙제를 안 해서’, ‘골고루 먹지 않아서’, ‘잠들지 않아서’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모두가 약속과 규칙을 이야기할 것이다. 무수히 죽어간 아이들 앞에서 누구도 체벌의 정당성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
여기, 한 아이가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을 함께 보자.
제목: 아빠를 패고 싶어요
지금 중3, 시험이 7일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짜증 나서 공부하다 말고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빠를 패고 싶어요. 일단 저는 공부도 잘하고 나름 모범생인 학생이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일지 몰라도 맨날 속으론 ‘아 진짜 저 새끼 죽여버리고 싶네’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을 패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빠고요.
제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안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법이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때리고 욕해도 된다’는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가 알고는 있는 그런 법이었습니다. 당연히 힘 있는 사람 즉 돈을 벌어오고 신체적 조건이 유리한 사람이 바로 아빠였고요. 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제발 때리지 말라고 빌고 있는 제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 정도가 막 진짜 TV에 나올 정도로 심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굉장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르니까요. 한 7살 때부터 그러더군요. 아무것도 아닌 일이고 고작 7살짜리가 뭘 안다고 그랬을까요. 모르면 가르쳐 주면 될 나이인데, 그렇게 소리 지르고 욕하고 때릴 일이었을까요. 저는 그저 화풀이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에게 맞을 때, 그리고 혼자 방안에서 울고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십니까? 죽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이러다가 뭔 병이라도 하나 생길 것 같아요. 이렇게 길게 제 이야기를 적어본 게 처음인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답을 바라고 적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뭐 뉴스에 나올만한 짓은 안 할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저는 이만 자러 갈게요.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를 이해하려고 한다. 아무리 배울 것 없는 사람이라도 부모는 부모다. 나를 만든 사람이자, 의식주 등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할 존재다. 내 삶을 좌우하는 절대적 존재에게 밉보이고 싶은 아이는 없다. 사연 속 아이 역시 아버지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을지언정 ‘뉴스에 나올만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은 그렇다. 약자와 강자의 관계가 역전된다면 어떨까?
이웃이 시끄럽다고, 배우자가 약속을 어겼다고, 동료 직원이 실수했다고 상대를 때리진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 때릴 수 없으니, 자식 역시 다르지 않다. 천부인권(天賦人權)의 이치다.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체벌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부모 입장에서 손쉬운 방식이다. 체벌을 당한 아이들은 두려움, 공포 등의 감정을 느낀다. 폭력의 효과는 표면적이고 일시적일 뿐, 사연 속 아이처럼 속 깊은 분노를 품고 자라게 된다.
아이와의 소통이 힘든 매 순간 끓어오르는 감정을 부여잡고 ‘좋은 부모’답게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것만큼은 기억하자.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큰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어떤 세상을 만나게 할 것인지는 부모의 말과 행동에 달렸다. 아이의 자랑거리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민법915조 폐지 이후를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의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