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避暑)

뜬금없는 시인 이야기 11

by 정현민

피서(避暑)


난리통에
피난가듯
보따리를 지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깊고 어두운 곳으로
걸음걸음 바쁘게 갔다.

마른 몸을 감춘 곳은
땅과 나무 사이 골
깊지 않게 물이 모여
빠르지 않게 흐르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
눈부시지 않은 곳

난 아이들과
야트막한 도랑에 몸을 숨기고
키 작은 까치박달 잎사귀를 덮고
이글이글 눈으로
나를 찾는 뙤약볕을
숨죽이고 슬쩍
가슴 졸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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