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은 아닌가요? 라고 묻는다면, '성적도 좋지않지만 몇 년인지도 모르는 시간을 응원해왔소. 하지만 지금은 지쳤소.'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팬이었나요? 라고 묻는다면, '일단 고향팀이어서 팬이었고, 성적은 좋지않아도 그들의 스토리가 좋았소.' 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내 인생에 충청도에서 산 시간은 절반도 안되었고, 지금도 타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한화를 응원하기 시작하던 시절은 이미 충청도에서 살던 시기가 아니다. 타향에 있다보니, 더 팬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언젠가부터 고향팀이니까 막연히 응원했었다. 99년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구대성 선수가 마지막 공을 던진 후, 우승한 순간에는 라디오로 실시간 청취를 하며 소리를 질렀고 (당시 자취할 때인데 티비가 없었다), 매번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었지만 김경언 선수의 드라마같은 안타를 봤을 때에도 소리를 질렀다.
출처 : 뉴시스
인터넷에 보면 한화 팬들은 불심이 강하다고, 보살이라고 우스개로 이야기하는데, 나의 경우는 보살이라기 보다는 어차피 우승은 먼 길이니 한 경기, 한 경기 드라마를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첫화부터 시청율이 대박치는 드라마는 아닐지라도, 보다보면 웃고, 가끔 눈물이 찔끔 날 것 같기도 한 몇 화쯤보다가 유독 7화가 잼있었다던가... 하는 드라마와 같다고 할까?
지금은 야구를 끊은지 꽤 오래되었다. 5년도 넘은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그 드라마가 매년 반복되고 있고, 그걸 지켜보며 종교도 없는데 보살이 되어가는 나를 보면서 이제는 끊어야겠다고 자연스레 생각한 것 같다.
뜬금없이 이런 한탄을 왜 적고있냐고 묻는다면, 마침 비오는 일요일 오후, 카페에서 평온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야구장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 책, 한화이글스의 팬이었던 기억을 떠올려주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응원을 시작하던 팀도 마침 그리 잘하는 팀은 아니었다는 글을 읽다보니, '아, 나도 한화의 팬이었지' 라는 과거가 떠올랐다.
한때는 타향에서 살지만서도, 한화경기를 할 때면 직관도 하고, 저녁에 제때 퇴근이라도 한 날엔 야구경기를 몇시간이고 보던 기억말이다. (이럴 때면 와이프는 포기하고 안방가서 TV를 따로 본다)
비록 명품 드라마는 아니지만, 조연 연기자들의 맛깔난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 메인 요리가 맛있는 맛집은 아니지만, 밑반찬들이 맛있어서 따뜻한 흰밥에 얹어 먹으면 '으흠~' 하고 잠깐이라도 맛을 음미하는 그런 식당이었다면, 그래 그랬다면 아직 팬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