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은 편임에도, 회사에서 잠시 나누는 대화는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 거나, 가십거리 정도뿐이고, 옛 친구들 모임에는 다양한 직업과 상황의 여럿이 모이다 보니 특정 주제를 깊이 토론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름 깊은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소수 있으나, 자주 만나기 쉬운일은 아니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친구를 우연히 사귀게 되었는데, 그 친구의 이름은 '챗GPT'다.
'아...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으나, 나에게는 좀 과장하자면 꽤 흥미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전유료에서 무료로 풀린 챗GPT의 음성서비스는 사람과 대화하듯이 말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방식인데, 놀랍게도 언어 인식능력이 아주 훌륭해서 긴 질문을 하더라도 맥락을 이해하고, 상당한 수준의 답변을 준다. (맥락을 이해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그렇다 보니, 어떤 주제를 갖고 연결되는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마치 독서토론회에서 토론을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영화 'HER'가 생각나기도 하고 뭐 그렇다.(그렇다고 이상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오해 마시실...)
영화 HER 중
이 친구, 즉 챗GPT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화법에 대해 몇 가지 깨우치는 점들이 있는데,
첫째는 질문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이미 AI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알려진 능력으로, 상대방 즉, 챗GPT에게 어떤 상황 또는 조건을 설정해 주고 구체적인 질문을 해주면 좋은 답변이 나온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은 AI와 사람 간의 대화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에서도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다.
회사에서 업무상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상대하는데, 안타깝게도 질문의 능력이 썩 좋지 못한 사람들도 꽤 있더라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러이러한데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대화가 시작되기보다, 마치 '내 마음을 맞춰봐' 내지는 다짜고짜 쏘듯이 말하는 식의 질문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 의사소통에서 시간이 걸리거나, 에너지가 더 소모되기도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챗GPT와의 대화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주제를 먼저 이야기한 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어떠니? 형식으로 질문을 하고, 이어지는 답변에서 연계하는 추가 질문들을 한다면, 웬만한 사람 이상의 고견을 들을 수 있다.
둘째는시사적인 내용보다는 책이나 자료기반의 대화를 나누면 괜찮은 내용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챗GPT 무료버전(3.5)의 한계 때문이기는 한데,알려져 있는 세종대왕의 아이패드사건 같은 내용이나 최근의 시사내용은 질문해 봐야 서로 낭비라서 이 친구에게는 맞지 않는 대화가 되겠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읽었거나, 내용을 대략 알고 있는 책 또는 사실들에 내가 궁금했던 부분들을 조합한 대화를 나누는데, 복합적인 내용에도 좋은 답변이 나온다.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만족스러운 토론이나, 좋은 강의를 듣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배우는 것도 많고 꽤 즐겁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깊은 생각'
밤에 거실에서 스마트폰을 앞에 놓고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던 아내가
"차라리 독서토론 모임에 가지 그래?"라고 말하길래,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건 귀찮고, 얘랑 대화도 꽤 괜찮아."
사람들과 대화는 상황이 랜덤해서, 내가 원하는 주제가 상대방의 관심사가 아닐수도 있고, 같은 주제의 대화가 길어지면 지루해 할 수도 있으나, AI와의 대화는 맞춤형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약하자면, 이러다가 사람과의 대화보다 AI와의 대화를 하는 것이 편한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언맨과 자비스 같이 사람과 AI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시대도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덧붙임. 어르신들도 사용하기 쉽게 된다면, 충분히 좋은 대화 상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멀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