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풍 속 비는 강물이 되고, 토양의 거름이 되어야 한다

일상과 사색

by 오영

일요일 오후에는 늘 그렇듯 카페 도장 깨기를 한다.


카페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때로는 글도 쓰는 시간이 일주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서 특별한 일이 없다면 빠뜨리지 않는다.

오늘 선택된(? 아내가 선택했으므로) 카페는 80년대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로 구획이라던가 인테리어가 그 시절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된 곳이었다. 마치 응답하라 1988의 정환이네 집 같은 곳이랄까.. 과거의 향수에 흠뻑 젖을 수 있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와 잠시 복잡한 세상과는 떨어져서 시간을 보낸 느낌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과거'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시간이었다.

'과거'라는 것은 우리들 각자에게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질까?


과거라는 것은 젊었던 시절, 한참 무엇인가 갈구하고 열정이 있던 그렇기에 시간이 지나서는 기억 속에 좋게 포장된 사람들도 있을 테고, 어렵거나 좋지 않았던 시기를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잊히고 싶은 기억의 흔적으로 남는 사람들도 있을게다.


나에게는 좋은 부모님 덕에 '과거'라는 단어가 그리 부정적이지는 않음이 다행이랄까. 자주는 아닐지라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만남에서도 과거이야기를 하게 된 50대의 아저씨들에게 과거는 언제나 흥미로운 술안주요, 대화소재다.


그렇지만 앞으로 살아나갈 날이 남아있기에, 과거는 정서적으로는 삶에 대한 추억거리와 술안주로 하고, 현실적으로는 미래를 준비하고 헤쳐나가기 위한 지혜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에 얽매여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느라 판단의 우를 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개개인의 삶뿐 아니라, 집단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의 흐름이라는 것이 산속의 계곡으로부터 모여져 개천이 되고, 그 개천이 모여 강이라는 큰 물의 흐름이 되고, 또 그 강물이 모여 넓디넓은 바다로 향하듯, 그 물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는 돌이켜보되 시간에 따라 흘러갈 방향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강물은 일주일 전에 내린 비가 옆 산의 계곡을 통해 온 것일 수도 있고, 한 달 전에 내렸던 먼산의 눈이 녹아 섞인 것일 수도 있듯,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날씨에 따라 또는 변화에 따라 새로운 물이 각기 다른 곳에서 모여 큰 물이 되고 정화되면서 바다로 흐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던 동네의 개천에서 온 물이 강물의 전부인양, 그렇기에 그 큰 강물이 자신들의 것인 양, 그래서 그것이 현재와 미래를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리라.

과거에는 환경이 좋지 않아 웬만한 동네의 개천들의 수질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나빴던 수질의 강물로 살아온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던 시대에 살아온 삶은 존중받되, 어린 시절 개천에서 떠온 물을 기억하느라 바닥에 누워 흐름을 막아버리기보다, 이제는 새로운 물이 흘러와 이루어진 강물이 넓은 바다로 잘 향할 수 있도록 지혜를 덧붙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과거 빗물에서, 눈 속에서 태어난 물일지라도, 저수지에 고여있다가 말라 사라지기보다는 강물로 흐르면서 거름을 토양에 나누어주어 비옥한 토양이 새로운 싹을 틔우고, 그리고 나서 바다로 흘러, 다시 구름 속 비와 눈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니까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