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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계주의 중간주자가 될 것인가?

사색과 진지 사이

by 오영

회사에서 일하던 중 오랜만에 예전 같은 팀에서 일했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시작은 업무에 대한 대화였으나, 점차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로 바뀌게 되었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회사가 과연 잘하고 있는가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가 마무리되었다.

대화 중에 한 말, 우리 회사는 육상 계주경기에서 중간주자를 맡아 바톤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임원들은 없더라였다. 20여 년을 다닌 우리에게 회사는 왜 그렇게 비추어지게 되었을까?


'계주경기'.

여러 명의 주자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정해진 거리를 달려 상대팀과 승부를 겨루는 경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계주경기에서 승자는 첫 번째 주자부터 두 번째, 세 번째의 중간주자, 마지막 주자까지 모두 단상에 올라 메달을 수여받는다.

즉, 중간주자들도 훌륭히 역할을 했다는 보상이자, 그들이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의 부여가 되는 것이다.

상상해 보자. 경기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를 받는 마지막 주자한테만 메달을 준다던가, 첫 번째 주자와 마지막 주자에게만 메달을 준다고...

누가 계주경기의 중간주자가 되고 싶을까? 또는 중간주자가 되었더라도 열심히 달릴 이유가 있을까? 그냥 개인경기를 나서거나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 주자가 되려고 할 것이다.


현실의 사회생활로 가보자.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직장에서, 그렇지 않다면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마지막 주자에 주목하고 또 보상받고 있지 않은지.. 잘하면 첫 번째 주자까지는 주목을 받을 수도 있겠다. 내가 다니는 회사뿐 아니라, 친구들이든 가족이 다니는 회사든 이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결과만 주목받는 사회.


장기적인 비전 내지 전략의 실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중간주자도 마찬가지일 게다. 중간주자가 바로 결과를 낼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을 담당한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도록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 뒤로 달리거나, 너무 느리게 달리거나, 레인을 바꿔 달리지 않고 - 달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실히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계주의 선수들은 출발점보다 결승선이 더 앞서 나가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현실의 회사생활에서 또는 크게는 나라의 운영에서도 그 중간주자를 맡는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간주자가 결승선에 손가락 끝이라도 걸쳐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우리네 현실은 그래야 진짜로 살아남는다. 중간주자에게는 보상이 없으니까. 그래서 중간주자를 맡을 이에게는 동기도 없게 되고 말이다.


어떠한 비전이나 전략의 달성에 있어, 출발, 과정, 그리고 결과를 모두 꾸준히 만들어보려면 오너정도는 되어야 긴 여정을 감수하고 목표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데, 이건 오너가 스마트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긴 시간에 걸쳐 여러 주자들이 과정을 이해하면서 빌드업해 나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것은 회사든 국가든 오랫동안 존속해야 하는 모든 구성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계주경기와 같이 긴 거리를 여러 구성원에 걸쳐 결과가 만들어지려면 중간 주자들에게도 적합한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계주경기에서 마지막 주자만 메달을 준다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앞의 주자들이 굳이 열심히 할 이유가 없을 테고 모든 선수들은 마지막 주자만 하고 싶을 테니까.


나름 오랜 기간 다양한 역할의 부서에서 지켜본 바 흔히 보이는 사례가 대부분의 임원급 리더들이 단거리 경주마가 되어, 하반기 평가시즌에 생존자가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은 근원적이거나 기반을 다진 것도 아니고, 변화를 꾀하지도 않을뿐더러, 실제로는 동작하지 않음에도 되는 것같이 말만 번지르르하거나, 겉포장만 바꾸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나도 이게 이해가 되는 거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 한해 한해 살아남아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으니까...그들도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왜?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있기에 중간주자가 되어 바톤을 잘 넘겨주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생겨나기 어려우니까.


안타깝게도 사회에서도 그런 것 같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을 중요시 여기는 그런 시선과 사회적 평가가 기저에 깔려있는 이상, 초기에 인프라를 다진다던가, 다음 주자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1년 아니 1년도 아닌 2월부터 10월까지 8~9개월 내 성과가 나오는 것에만 집중하고, 나라에서 위정자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토목건축사업들만 계획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는 회사든 국가든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로써 먹혀들었으니 그렇게 해왔다 치더라도, 앞으로도 동일한 시스템으로 조직과 사회를 운영할 때 잘 생존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계주경기에서 모든 선수가 열심히 하는 동기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모습들을 보아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도 짐작할 수 있다.


기업이라는 것은 내가 오너가 아니니 어떻게 하기 어렵고, 사회에서도 시스템을 한 번에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게다. 그럼에도 그렇게 변화해 나가려면 회사에서는 동료들에 대해서도, 옆 부서에 대해서도 그런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좋은 시선과 평가를 해줘야 하겠고 말이다. 기업은 내가 주인이 아니지만, 사회에서는 우리 모두가 스마트한 주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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