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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계약서

일상과 사색

by 오영

뉴스를 보다가 나름 놀라운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효도계약서'.


효도계약서는 부모와 자녀 간의 효도 의무를 명확히 하고, 증여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문서라고 하는데, 효도가 계약의 대상이라니... 가족들마다 상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효도를 하고 안 하고는 각자의 결정이겠으나, 이게 계약서를 작성해서 실행여부를 법적으로 따져야 하는 문제였던가?


'계약'이라는 것은 어떠한 일정한 목적을 위해 두 사람이상의 의사를 합치함으로써 성립하는 법률적 행위라고 하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효도를 받기위한 목적으로, 자식들 입장에서는 재산의 증여받음을 목적으로, 부모자식 간 위에 해당하는 상호 요구사항을 작성하고 이행 여부에 따라 민사소송까지 발생하는 사례들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계약한 효도의 행위를 준수하지 않아 재산의 증여를 취하한다던가, 반대로 재산을 요구하는 행위와 같은 것 말이다.

일부겠지 싶어 포탈 검색어에 '효도계약서'를 입력해 보니, 효도계약서 양식, 쓰는 법 등이 바로 검색된다. 생각보다 어느 정도 쓰이는 추이에 있는 모양이다. 내가 트렌드에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전적인 단어를 써보자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많이 들어본 동거계약서, 육아계약서, 결혼 전 가사분담계약(서)까지는 요상하다 싶어도 '재미있네' 수준으로 생각했다면, 이제 막 들어본 효도계약서에 내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가족의 붕괴에 대한 신호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효도라는 것은 혈연관계에 있어 가장 적은 촌수인 부모-자식 간에 이루어지는 행위인데,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한 문서화된 계약행위를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은 인간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계를 금전적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법적효력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니, 그것은 부모자식 간 '관계의 재정립'이자 '가족의 붕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이다.


이런 추이로 변화한다면, 과연 자연생식에 의한 가족의 형성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아니, 가족이라는 집단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가?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이 시대를 넘어, 각각의 객체 중심의 사고와 이익을 도모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것을 상상한다면 그리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 될 것이다.

개인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중요시되는 세상이 움직이는 동인은 무엇이 될 것이며, 무엇으로 유지될까? 기족마저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간성을 기대하기는 더이상 어려워지는 세상이 될까?

각 개인들은 이해타산에 따라 모였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그리고 노년에는 결국 고립된 삶을 살게 될까? 등의 질문들이 떠오른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효도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데다, 노키즈다보니 가족소재의 이야기를 쓸 때 개운한 감정은 아님에도 효도계약서라는 것이 내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서, 잠시 머리가 고장 난 김에 두서없이 끄적여보게 된 하루다. 참 요상한 세상이 되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너도 효묘계약서 좀 쓰자. 하루 1분씩만이라도 안기기라던가 말야...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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