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영 May 23. 2023

나의 영정사진에게 바란다

일상과 사색

 일요일 오후에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와 아내의 루틴이다.


 책을 읽기도, 인터넷을 하기도, 최근엔 글을 쓰기도 하는데, 마침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을 읽던 중 이런 글을 보고,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한 후,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문학사전을 펴놓고 동서고금 작가들의 얼굴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 장수하는 것도 좀 그렇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어 죽은 작가들은 언제까지나 젊을 때 얼굴이 남아 있는데 비해, 장수를 한 작가는 죽기 직전의 사진이 당연한 듯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라디오 중 발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질문한다.


"장례식 때 영정사진은 어땠으면 좋겠어?"


마침 아내도 그 생각이 나더란다.


아내는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다수의 사람들 앞에 진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캐리커처같은 걸 놓으면 어떻겠냐고 한다.


앗! 내성적이어 캐리커처라니...


생각치도 못한 답변에 당황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아니, 아무리 내성적이어도 그건 좀 그렇지 않아? 사람들이 사진은 보고 추억해줘야지..."


"그래? 그럼 좀 불친절한 장례식일라나?"


등의 이런 대화가 오갔다.

영화 써니 중. 이런 장례식은 내 기준에서는 오버고..


 나는 내 영정사진 죽기 전 노년의 모습이기보다는, 또는 여느 영정사진처럼 진지하고 인자한듯한 모습의 연출된 사진보다는,  아직까지는 오지않은 황금기이지만 인생의 황금기에 활짝 웃는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만일 황금기가 안온다면, 최소한 뭔가 즐거운 분위기에서 찍은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스냅샷으로 나온 사진 중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사진을 찍을 때, 얼굴 표정이 굳어버려서 그런 사진이 나오기 힘들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 잘생겼을 때 가능한 표정

 죽음을 예감하고 남기는, 최대한 무덤덤한 모습은 아무래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짠한 미소가 될지도 몰라서 그런 사진도 별로다.


 없던 진지함을 안드로메다에서 끌어온다던가, 얼핏 본다면 '앗! 저 사진 무서워...' 하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죽은 후 누군가 본다면, '하하하 저 사람...참' 하는 느낌이면 좋겠다.


내 영정사진을 보고 이런 표정이 나오면 곤란하다구!

  

  장례식에 누군가 온다면, 사진을 보고 머리가 흰 쭈글한 노인의 모습으로 기억되기보다, 생전에 나에 대한 좋은 기억 하나정도는 떠오르게끔 하는 그런 사진말이다.


그냥 즐거운 모습의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마무리할 때 육체적으로 힘없는 노인의 몸으로 남을지라도, 마지막 진만은 힘솟모습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주말 고깃집의 저녁 풍경으로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