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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의 용도

일상과 사색

by 오영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가 뒤늦은 밤이 되서야 잠이 깼다.


늦은 밤에 티비를 보다가, 자기 전 입이 텁텁해서 양치를 하는데, 문득 눈 앞에 놓인 연두색의 플라스틱 양치컵을 바라보게 된다.

이 컵은 원래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컵인데 나는 양치컵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집에는 커피 전용 찻잔이 있다. 이 찻잔은 룽고를 마시기 좋은 크기와 그립감을 가진 잔으로, 캡슐 커피머신에서 뽑은 룽고를 마시기 위해 구매했던 잔이다. 지금은 캡슐머신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믹스커피 전용 커피잔으로 사용되고 있다. 용도 변경이 되었달까?

이렇듯 집에는 수많은 컵과 잔들이 있는데, 각각의 용도가 명확히 정해진 것도 있고, 정해진 용도없이 사용되는 것들도 있고 심지어는 사용되지 않고 주방수납에 대기상태로 있는 것들도 있다.


이 컵과 잔들은 쓰임을 받을 때 비로소 그 용도가 생기는 것이리라.




고전인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SF소설이 있다. (무려 90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사람이 용도에 맞춰 인공적으로 태어난 세상을 그리고 있다. 멋진 신세계를 위해 사회에서 필요한 각 직업에 맞도록 유전학적으로 맞춤 인간들을 탄생시켜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단순한 일은 단순한 일에도 지루함과 불평이 없도록 성격이 조정된 인간을 만들고 그 직업을 부여하며, 창의적인 것이 필요한 업무에는 또한 그렇게 조정된 성격의 인간을 탄생시켜 그런 직업을 부여한다.


집에 있는 컵이나 잔들이 모두 한 용도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듯이, 사회에서도 모두 한 용도 즉, 한 직업만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진데, 사람도 그렇게 된다면 이상적인 멋진 신세계가 될 것인가?

누구나 소위 꿀빠는 업무를 하고 싶을텐데, 모두 그럴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 소설에서는 결코 그런 사회가 '멋진 신세계'라고 결말짓지는 않는다. 즉, 사람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무시된 세상에 대한 역설적인 제목인 셈이다.

(아...명작 소설인데 스포를 하게되어 죄송...)


사람은 컵과 같은 공산품이 아니다.


비록 태어난 지역과 환경은 다를지라도, 자라면서 주어진 환경과 교육 등이 받쳐준다면 얼마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그 조건들이 중요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 조건이 안되는 경우 안타까움이 있는 것일게다.

정답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 정도의 철학적 깊이와 지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연두색 플라스틱 양치컵을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용도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 어느 하루의 새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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