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어릴 적부터 별명을 잘 지었는지, 결혼 이후에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거는 이름이 OO야 라고 하면 그 이후부터는 OO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등 긁는 효자손인데, 이름이 '동수'다. 왜 '동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동수가 되었다. 동수가 우리 집에서 살게 된 건 거의 15년이 넘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동수는 지금 침대 머리받침과 벽 사이에 떨어져서 몇 개월째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동수를 데리고 왔는데... 얘한테는 동수란 이름이 입에 잘 안 붙는다. 언젠가 이사하거나 가구위치를 대폭 바꿀 때, 먼지 속에서 쉬고 있는 동수를 구해줄 생각이다.
동수와 비슷한 아이. 동수야, 잘 지내지?
또 다른 별명들로 지금은 지나간 차들이지만, 백만이, 천만이가 있다. 백만이의 경우, 결혼한 직후 산 차였는데, 백만이가 된 이유는 당시 아내가 백만원을 출자해서 백만이가 되었다. 그다음 차가 천만이 인데, 얘는 천만원을 출자한 건 아니고, 백만이 후속이라 천만이가 되었다.
아...이렇게 안부를 것 같다고? 아니다. 실제 그렇게 부른다. 동수 어디 있어? 천만이 세차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간다. (지금 차는 별명이 없다. 뭐라 지어야 할지... 만만이도 아니고)
최근에 별명이 지어진 아이는 '윌 스미스'다.
윌 스미스는 올 초부터 키우던 네온테트라 종의 물고기인데,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아이다. 처음부터 키우던 아이들이 아마도 '네온테트라 병'이 돌았는지 하나둘씩 무지개 연못을 건너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다. 남은 전설어(魚)다.
네온테트라 병에 걸리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지개를 건너게 되는데, 다행히도 이 아이는 혼자 잘 견뎌주고 있다. 그래서 별명이 '윌 스미스'다.
잘 살아주렴, 윌
그 밖에, 아내와 나는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별명으로 부른다. 이건 결혼 전부터 그래왔는데 입에 붙어버려서 이제 이름을 부르는 게 어색하게 된 상황!
요즘 일부 기업에서 호칭 개선을 한다고, 직책을 빼고 OO님으로 통일하거나, 님도 빼고 애칭이나 이름으로 부르는 회사도 있더라.
아무래도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우리나라에서는 어색한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OO님이라고 통일하라고 해서, 소규모 조직(예를 들어 팀)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치더라도, 만일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마침 임원이 들어와서 마주쳤을 때 OO님, 안녕하세요? 하면 되게 이상하지 않을까?
'님'도 빼고 말한다면 더 웃길 테고...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꽤 오래전에 있던 일인데, 당시 높은 임원이 지나가다가 직원들이 못 알아본 적이 있었나 보다. 그 이후 고위 임원들 사진과 이름을 인쇄해서 붙인 부서도 있었고, 임원을 숙지하라는 무언?의 지시가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직속 임원 아니면, 누가 그리 얼굴을 안다고 그랬는지. 정 그렇게 인사받고 싶으면 견장을 도입해서, 상무는 별 하나, 전무는 별 둘, CEO는 봉황 뭐 이렇게 하던가. 그럼 화장실에서 만나더라도 잊지 않고, 거수경례를 해줄 수 있는데... 아! 견장색깔은 녹색이어야 제 맛이다!
호칭 관계를 유지해도 별별일이 있고, 없애는 과정에서도 어색함이 있어보인다. 아무튼 오랜 시간 유교사회로 지내왔던 세상이 빠르게 바뀌려니 번거로운 일들도 있는 듯 하다. 나도 나이가 든 축에 속해서 이런 변화가 어색해서일까? 우리 집처럼 차라리 별명으로 부르면 재미라도 있을 텐데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