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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서만 보이는 것들

일상과 사색

by 오영

나의 출퇴근은 도보로 이루어진다. 시간은 편도 15분 정도.


같은 길을 오가지만, 출근길에 보이는 것과 퇴근길에만 보이는 것들은 다르다.


출근길에는 아침에 운동하는 사람들, 고개를 숙인채 스마트폰을 보거나, 굳은 표정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출근길에 깔려있는 돌로 된 블럭들이 주로 보인다. 그리고, 서둘러 가는 길에 그 블럭들을 빗겨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 운동화가 보인다.


반면에 퇴근길에 먼저 보이는 것은 하하호호 웃으면서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출근길과 같이 서둘러 가는 듯한 자동차들이지만 어딘가 여유 있어 보이는 차들의 경쾌한 움직임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항상 눈에 띄는 것은 콘크리트 바닥에 있는 작은 길냥이의 발자국.

언젠가 어떤 길냥이가 늘 지나가던 길을 사람들이 콘크리트 포장하면서, 미처 굳기도 전에 평소처럼 지나가면서 남겼으리라. 아마도 그 고양이는 늘 다니던 마중길을 갔을 뿐인데, 발바닥의 젤리에 살짝 불쾌감을 느끼며 '에엥? 모지? 불쾌하다냥!' 하면서 서둘러 점프했을 것 같다.


그리고 요즘 같이 해가 긴 날이면, 저녁을 향해가는 햇살을 반사해 주는 나뭇잎들이 보이고, 집에 가는 길목에 백 년은 된 듯한 거대한 고목이 보인다. 그 고목은 이 길이 생기기도 전부터 있었을 텐데 세월의 풍파와 변화에도 잘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도시의 한켠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리라.

뒤의 나무는 세명이 팔로 둘러싸야 할 정도

공원을 지나면서 비가 온 뒤라 파아란 하늘에 보이는 희미하게 하얀 달의 모습도 보인다. 해가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먼저 하늘에 나와서 밤을 준비하려는 모습이다.


집 근처로 오면, 노란색의 학원버스가 길목에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있고, 엄마는 아이들을 마중 나와 반기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제 노란색의 버스를 지나치고 나면, 하루를 보내고 안도하는 모습의 나를 보고 현관에 들어간다.


예전 몇 번의 다른 출퇴근길을 거닐었음에도 출근길은 항상 같은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퇴근길은 항상 어두운 창가에 비친 지친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여유라는 것을 가질 수 있기에, 퇴근길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일 게다. 이 여유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갔으면 좋겠다.


반면에 누군가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힘내세요.”라는 말로 생겨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생길지 모를 여유를 기대하며 살라고 해야겠다. 나 또한 언젠가 사라질지 모를 여유일테니 있을 때 즐겨야 하겠고 말이다.



덧붙임. 이런 글을 쓰면 있던 여유도 사라지는게 아닐까 싶지만, 미신을 안믿으니 걱정하지 말아야겠죠?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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