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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May 04. 2023

이어폰 이산가족 상봉기

일상과 사색

 나의 출근길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참 다행스럽게도 출근하는 길의 중간에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다. 요즘 같은 봄이면, 그렇지 않아도 가기싫은 회사지만 초록초록한 공원을 걷는 맛이 있어 아침의 우울함을 한스푼 덜어주는 출근길이다. 거기에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면, 자 두 스푼으로 하자.

출근길 중 공원의 끝자락

 초록초록한 공원의 끝자락의 대로에 있는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야하는데 이 신호를 한번 놓치면 2~3분은 더 기다려야한다. 알지않는가? 출근길은 2~3분은 제곱의 해줘야하는 시간이란 걸.

 그 날도 음악을 들으면서 나무 틈새로 보이는 신호등을 예의 주시하고있는데, 짧은 첫번째 횡단보도의 10초 등이 켜지는 것이다.

  '아! 뛰어야지. 아침부터 뛰는 것은 나의 무릎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하는 찰나의 생각과 함께 우샤인 볼트가 빙의되었다.


 '다행이다. 건넜어' 라는 안도와 함께 남은 출근길을 마쳤고, 업무시간 10분을 남긴 실로 적절하다 못해 교과서적인 타이밍에 자리에 도착! 귀에 꽂은 이어폰을 케이스에 넣어야지 하고 주머니를 두드렸는데, 어라? 주머니가 허전하네 싶다.

 아차! 아까 우샤인 볼트 만났을 때 외투 주머니에서 빠진것 같다. 어쩌지? 사용한지 몇 년 되었지만 아직은 쓸만한데... 케이스가 없으면 충전도 안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다가, 아! 이제 드디어 새 것을 살 때가 왔는가 싶었다.


 결국 단짝 케이스를 잃어버린 이어폰 두 개만 덩그러니 책상에 놓인다.

 어쨋든 와이프한테 카톡으로 출근길에 있었던 일을 말했는데 다행히 혼나지는 않았다. 와이프도 오래된 이어폰임을 알았을까? 새로 살 기회인가 싶었는데... 굳이시간될 때 출근길을 탐색해보겠다고 한다.  

 업무가 시작되니 자연스레 잊고 오전 업무를 보고 있는데, 와이프한테 카톡이 온다. 열어보니 사진이다. 초록초록한 바탕화면에 베이지색의 케이스.

와이프가 보내준 사진. 별모양 눈은 내가 붙인거다. 하하!

 두어시간 지났을텐데, 어렇게 그 자리에 있었는지, 또 그걸 어떻게 발견했는지 신기함이 앞선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 것을 사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새 것을 꿈꾸었다가 현실로 돌아온 순간이랄까?


 비단 사용하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아쉬움과 후회가 남기 마련이거늘,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어찌 나는 기대와 즐거움이 부풀어 올랐었는지 싶다.

 몇 년을 수고해준 나의 무선이어폰. 비록 배터리가 약해져서 지속시간이 짧다만 그래도 쏠쏠하게 역할은 해주었던 나의 첫 무선이어폰.


 미안하다. 잠시나마 내가 너의 고마움을 잊고 새 것을 꿈꾸었구나.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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