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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Jul 28. 2023

사발면의 추억

일상과 사색

 얼마 전 수해복구에 투입된 국군장병들이 식사하는 사진을 보니, 군대시절 복구지원 때 생각났다.

젊은 친구들, 고생이 많습니다

 사발면에 얽힌 일이었는데, 생각하다 보니 군대에서 일화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사발면에 얽힌 추억들이 생각나, 기억저장소에서 꺼내어 순서대로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첫 사발면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육개장 사발면이 출시되었을 때였다. 세상에서는 공전의 히트를 했고, 그 맛이 궁금하던 우리 집에서도 슈퍼에 가서 '하나'를 산 뒤 다섯 식구가 나눠 먹었다. 조금씩만 맛봐서인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이게 첫 출시된 사발면이라네요. 이거였는지는 가물가물합니다.

 어릴 적에는 잘 몰랐었어서 하나로 나눠먹었던게 어색하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 집의 형편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는데 어머니께서 워낙 절약을 하는 편이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식구들도 다들 그게 어색해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나는, 재미있던 추억이다.



 

 두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아마도 그때 오전/오후반이었던 시절이었나 보다. 학교에서 친구 4명과 저녁도시락을 먹었었는데, 한 친구가 도시락을 안 먹고 학교 앞 가게에서 컵라면을 사 와서 같이 먹은 적이 있다.

 라면국물은 못 참는다고, 면은 친구가 다 먹고 난 후, 우리들은 서로 국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아웅다웅했고, 결국 도시락통에 국물을 조금씩 나눠서 말아먹었었다.  그때도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집에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계신다.




 세 번째는 군대에서였는데, 내가 있던 부대는 시설이 좋은 편이었어서, 신막사 구조로 16명이 한 내무실에서 생활했었다.

이런게 신막사였는데, 지금은 구막사로 불리네요 ㅎㅎ

 당시, 월드컵 예선이었는지, 올림픽 예선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10시 정도의 밤에 우리나라가 경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수송대 소속이던 우리 내무반은 사실 당시 큰 인기였던 튀김우동 큰사발을 외부로부터 조달하는데 문제가 없었고, 당시 고참들도 좋았는지 밤에 불침번이 경계를 서고, 십여 명이 엎드린채 다들 큰사발을 하나씩 먹으면서 축구경기를 봤던 기억이 난다.


 들켜서는 안 되니 문에 수건을 걸어 빛을 차단하고, 조용히 응원도 했다. 사실 아마 위에서도 용인해 줬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때 엎드려서 사발면을 먹으며 축구경기를 보고 있노라니, 걱정이 사라져서 행복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네 번째도 역시 군대에서였는데, 당시 호우로 인해 피해가 있던 지역들에 여러 부대들이 복구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나가서 하루 종일 고생을 하고(점심은 먹었습니다.) 저녁에 철수를 하기 위해 육공트럭에 몸을 싣고 떠나는 때였다.

 아니!! 이런 다른 부대원들은 옹기종기 모여 사발면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트럭에 탔던 우리 부대 사람들은 다들 웅성웅성했고, 왜 우리 부대는 사발면을 안 주지? 다들 의아해하는 중에 이미 트럭은 그 지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복귀해서 나중에 행정반에 있던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 참 군대란 이런 곳이었던 거다!!

 사발면이 미리 나오긴 했었는데, 주임원사가 복구지원병들에게 지급되는 그 많은 사발면을 다른데 팔아버려서 착복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군납비리가 많았습니다)


 이때의 허탈감이란... 안타깝게도 사발면에 얽혔던 행복감을 준 곳도 군대요, 허탈감을 준 곳도 군대였다.


 앞서, 올해 수해지역 복구에 나섰던 파릇파릇한 병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예전 생각이 나면서, 사발면에 얽혔던 추억들도 소환이 되었다.


 결론은 이상하지만, 아무튼 수해복구가 잘 되길 바라며, 옹기종기 사발면을 먹었던 친구들도 건강히 지원 마쳤길 바라며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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