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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May 05. 2023

증조할머니가 부른 '오빠생각'

음악에 대한 수다

 집에 가보처럼 갖고있는 오래된 카세트테입이 하나있다.

 어릴적 가족들의 목소리나 노래를 담은 테입으로 부모님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던 시절의 목소리도 담겨있고, 멋들어지게 부른 가곡도 있다. 이 테입이 한 순간에 녹음된 건 아닌 것으로 보이는게, 누나가 어릴 적 울던 상황(아버지가 울짜배기라고 놀리는 목소리도 같이 담겨있다), 그리고 더 커서 형이랑 누나랑 나랑 같이 부른 만화주제가도, 그리고 증조할머니의 불경소리, 노래도 담겨있다.


 증조할머니는 -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900년대 초 정도에 태어나셔서, 꽤 장수하시다가 아흔 다섯인가에 돌아가셨다. 즉, 많이 오래전 사람이셨던거다.


 테입 내에 증조할머니께서 부른 유일한 노래가 '오빠생각'인데 (아마 아 노래를 아시는 분은 나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더 많을 듯), 재미있는 점이 노래를 듣는 순간, '아! 그거...그게 뭐더라? 맞다! mbc라디오에서 나오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딱 그거다.

 원래의 음정은 온데간데 없고,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이런 식인거다.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가~실때 부분도 같은 음정과 박자다! 너무 똑같다, 우리의 소리랑.


 오빠생각이 조선시대부터 전해오던 우리의 소리였던가! 착각이 들 정도다.


오빠가 사온다던 비단구두

 이걸 들었던 순간, 난 라디오에서 나오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노래는 ㅇㅇ지방에서 전해오는 어떤어떤 민요입니다.' 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원래 민요는 달랐겠지, 암.. 그랬을거야. 노래 부르신 분들은 모르셨겠지만, 단지 모두들 음치 박치셨던거다 ㅠㅠ

 (하늘에서 쉬고 계실 우리 증조할머니나, 당시 라디오에서 민요를 부르셨던 분들을 놀리려는건 아니니 다음 문장을 보시고 오해하지 마시길...)


 추정컨데, 이 분들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즐길 여유가 없었거나, 다양한 소리와 노래 접할 기회가 없었으리라. 증조할머니뻘 되셨던 분들이 당시에 라디오에서 한양 인기민요 TOP10을 들으셨을리도, 불란서 샹송 차트100을 들으셨을리도 만무했을테다.

 어릴적 동네 아주머니가 부르던 노래와 농사지을 때 들려오던 노동요 정도였지 않을까?

 자라면서 제한된 음악만을 접했다보니, 커서도 알게된 노래의 음정과 박자 다 비슷하게 기억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이 아름답고 다양한 음악들을 못듣고 살아오셨구나 라는 측은함이 밀려옴과 동시에, 지금의 나는 얼마나 축복받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만 열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교향곡도, 아이유의 신곡도 얼마든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마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듣고 느끼고 즐길수 있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으므로, 더 좋은 음감과 노래 실력들을 뽐낼 수 있으리라. (내가 노래실력이  별로인 이유가 어릴적 만화주제가만 주구장창 불러와서 감각이 떨어진다는 되도않은 변명은 뒤로 하고 말이다.)


 그런 더 많은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라는 것과는 다르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된 서바이벌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와, 살아나갈 우리 다음 세대들이지만, 조금 달리보면 가끔 이런 위안도 가질 수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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