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오르가슴에 대한 갈망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배움에서 오는 희열 때문이다. 배움의 절정에서 맞이하는 지적 오르가슴은 상상을 초월하는 쾌감을 불러온다. 이러한 쾌감을 맛보는 순간, 자발적 독서인으로 성장한다. 자발적 독서인은 능동적으로 책을 찾아 독서를 즐기는 자기 주도적 실천가를 말한다. 자발적 독서인의 길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시간이 늘어난다. 책을 한 권 챙겨 외출하기도 하고, 설렘 가득한 여행길을 책과 동행하기도 한다. 독서공간도 다양해진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출퇴근 시 버스나 지하철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는다. 책을 들고 있는 자리가 곧 독서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배움의 희열을 추구하는 자발적 독서인으로 성장하게 될까?
무엇보다 첫 경험이 중요하다. 책을 읽고 배움의 희열을 느끼는 짜릿한 첫 경험이 독서를 지속하는 동력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고 싶은 가슴 설레는 기다림과 같은 독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즐거워야 할 독서를 오히려 고통으로 만든다. 정작 자신은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독서를 강요한다.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한 전집도 아이가 독서를 거부하는데 한몫한다. 아이를 위해 사 두었더니 열심히 읽지 않는 아이가 원망스러워 잔소리만 늘 뿐이다. 아이는 책을 읽는 척하는 거짓 독서로 엄마의 잔소리를 잠재우고, 읽기도 싫은 책을 읽어야 하니 억지 독서의 모습을 보인다. 어려서부터 강요, 기피, 거부 등과 같은 용어와 연결되는 독서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독서가 수단화되는 것도 문제다. 독서는 좋은 대학의 문을 열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더 높이 있는 대학으로 오르기 위한 경쟁 속에서 독서는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도구가 된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교과서에 등장하는 책만 선별하여 읽는다. 많은 책을 읽어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독서가 되다 보니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더 이상 책을 볼 이유도 사라져 버린다. 대학 입학에 성공한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독서율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내부에서 싹트지 않고 외적으로 동기화되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낚시 애호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짜릿한 손맛 때문에 낚시를 한다고. 낚싯대를 던져 놓고 찌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언제 잡힐지 모르는 기대감과 짜릿한 쾌감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나면 낚싯대를 들고 강과 바다를 찾는 이유다. 혹시라도 낚시를 못하게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기상정보에도 관심이 많이 간다. 낚시에 필요한 장비는 무엇인지 어디에 물고기가 많은지 어떻게 물고기를 유인하여 잘 잡을 수 있는지 등 낚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배워 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자체가 즐겁기에 배움의 영역을 확장해 가며 점점 몰입해간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낚시 전문가로 성장한다.
독서에도 희열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독서를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 습득에만 초점을 둔 제한적 행위가 아니다. 책을 읽은 결과로 나타나는 재미, 감동, 행복, 마음과 행동의 변화, 새로운 사실의 습득 등과 같이 아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인 것이 바로 배움이다. 아이가 책 한 권을 읽고 즐거움을 느꼈다면 또다시 책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맛있었다면 다시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같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다면 배움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스스로 찾아 읽은 책이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면 다시 새로운 책을 읽으려는 의지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과정의 반복으로 아이는 독서를 통해 배움의 희열을 알아가는 자발적 독서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때 지식 탐구를 위해 엉덩이 땀띠 날 정도로 의자에만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한 편의 논문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지적 오르가슴을 느꼈고, 이름이 새겨진 논문이 학계에 알려지는 순간 다시 한번 더 짜릿함을 맛보았다. 배움이 즐거워지는 순간, 자기 주도성을 갖고 몰입하게 된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배움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움은 강요, 억지, 족쇄 등의 단어가 가시처럼 박혀있을지 모른다. 책과의 거리는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고, 독서와는 담을 쌓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는 것처럼, 독서도 이러한 기다림과 설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