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4제곱미터> 를 보고.
*영화와 적당히 무관하며, 리뷰나 해석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물리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두고, 나의 생활반경 안에서 거점이 되어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혼자이기도, 가족을 구성하는 단위로 묶이기도 하는 ‘집’이라는 곳. 모두에게 집이란 곳은 필요한데 이 집이란 것은 내 마음대로 옮길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는 당연히 없거니와, 현실적으로는 ‘우리집’이라고 부르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나의 집이 아니라 주인은 따로 있으며, 그 주인과의 관계는 철저히 계약으로만 엮여있는데 그 사이엔 또 우리 둘만의 관계가 아닌 은행과 주택공사가 끼어있는 복잡한 무형의 어떠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게 오늘날의 집이다.
아파트라는 것은 더하다. 층을 없애고 생각하면 동일한 면적에서 땅부터 하늘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정한 높이의 간격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딛은 땅은 같은 곳이라 할지언정 그 높이에 따라 거주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금액이 달라지고 기대할 수 있는 이익과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조차 높이만 따진다면 양호한 편이다. 수직이 아닌 수평의 개념으로 보았을 때 동네와 지역, 무엇보다 도시에 따라 환산되는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지며 동일한 금액대의 대한민국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기괴하다 싶을 만큼 격차가 큰 것이 현 주거공간의 현실.
한 번쯤 해본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 어릴 적 상상 속 당첨자는 인생이 뒤바뀌고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살 줄 알았는데, 현재의 현실은 ‘로또 되면 서울 전세금 정도 구하겠다’. 청년들에게 집을 산다는 건 특히나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한다는 건 이미 포기한 상태인 타겟이 절반이고, 장기적으로 내 여생을 계산하며 이쯤이면 구할 수 있을까의 기대수준이 목표가 되는 암울한 현실. 돈을 조금만 더 모으면 저 정도 이사를 가봄직한 전세집이 내가 돈을 모으는 속도의 세네배 가속도가 붙어 결국은 더 멀어지는 꿈. 그렇게 대출과 영끌이라는 단어는 집과 밀접하게 맞닿아버렸다.
치솟은 금리에도 단단히 각오하고, 만연해진 전세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온갖 정보를 모조리 모은 후에도 온전한 안전함이란 없다는 위험부담을 가진 채로 집에 들어왔다면, 이후 목표는 같은 조건의 전세 연장. 좀 더 나은 형편으로 집의 주인이 된 사람의 이후 목표는 내 집을 숫자로 환산했을 때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것. 같은 집에 사는데 누군가는 이대로만 살고 싶고, 누군가는 이대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둘 다 삶을 바쳐 힘겹게 들어온 곳이니까.
이와 같이 안정되지 않은 서울 집값과 부동산계약이란 담론에 제도적 사건들을 더해 ‘층간 소음’이라는 이슈로 갈등 그 이상의 사건을 만들어낸 영화를 봤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게 문제일지도) 어찌 영화의 전개 보다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스토리의 전제인 현실 배경이 다 와닿는다.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살아갈 집을 위해 나의 목숨을 바치는 일. 매일 사는 곳이 집인데, 인생의 목표가 집이 되는 현실. 내가 살고 있지만 내 집도 네 집도 우리의 집은 더 아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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