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의 세계 1화

그림자라는 이름의 직업

by 희설

누군가에게 ‘비서’라고 소개하면 종종 이런 반응을 듣는다.

“요즘에도 비서가 있어요?”
“비서는 진짜 커피 심부름만 하나요?”

비서라는 직업은 참 묘하다. 누군가에게는 멋지게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직업은 한 번 하면 쉽게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있다는 것. 나 역시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고 있다.



비서의 자질은 따로 있다

비서는 단순히 ‘지시받고 수행하는’ 직업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사무직의 끝판왕, 또 어떤 이에게는 행정직의 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서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바로 **‘태도’**라고 생각한다. 눈치, 센스,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리고 철저한 보안 의식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상사가 회의 중 커피 한 잔을 시켰다고 하자. 이 단순한 요청 속에도 눈치와 센스는 필수다. 오늘 상사의 컨디션은 어떤지, 단맛이 당기는 날인지 아닌지, 회의 분위기는 어떤지에 따라 커피의 온도와 종류가 달라질 수 있다. 커피 심부름도 단순히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말하는 법보다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비서는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원의 말투에는 뉘앙스가 있고, 그 안에 감정과 의도가 담겨 있다.
“이 회의 말이야”라는 말 속에 “이거 네가 정리해”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사람 좀 다시 부를 수 있을까?”에는 “그 사람 별로였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상대방의 말에서 핵심을 읽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안은 생명이다

비서에게는 누구보다 강력한 보안 의식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이메일과 회의록, 민감한 문서를 다루며
‘아는 만큼’이 아니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야 할 때가 많다.

‘들은 것을 말하지 않고, 본 것을 기억하지 않으며, 맡은 건 확실하게 처리하는 사람’이 바로 진짜 비서다.



나는 왜 아직도 이 일을 할까?

비서라는 직업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계속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의 옆자리에서 함께 성장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돕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은근하고 조용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