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심리코드, 박우란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늘 정신이 몽롱했어요. 하지만 출산 100여 일 후 바로 복직을 하면서 잊었습니다. 그 기묘한 느낌에 대해서요.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천국일 것 같아 기대했던 긴 휴가, 육아휴직은 지옥 같았습니다. 어린 남매를 대하는 제 행위와 언어가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거든요. 전문가를 찾아가 1주에 1번 심리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상당히 긴 기간 동안 백수 처지에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했는데, 결실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때 무의식이라는 개념 하나는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 행위와 언어를 의식보다 크게 좌우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약 5년이 지난 지금도 무의식 속 어딘가 엉켜 있는 실마리를 찾아 풀고 싶다는 갈증을 여전히 품고 있습니다. 여유롭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거듭 실패하는 원인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그곳에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무심코 읽은 박우란 작가의 [여자의 심리코드]에서 다음 문장과 마주쳤습니다.
우리 무의식의 진리는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고 표면 위에 있습니다. 표면 위에서 우리의 반복되는 행위와 언어들, 그리고 증상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지 본인만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두더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의식의 진리,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진리는 어느 대단한 통찰과 형태로 숨어 있지 않고 지극히 사소한 우리의
움직임, 습관, 사유하는 방식 속에 있습니다, 박우란
지난 월요일, 오랜만에 만난 친모와 건강검진을 했어요. 검진을 받는 약 3시간 동안 혈압은 평소에 비해 치솟았고, 불안감과 우울감이 출렁거렸습니다. 검진을 마친 후, 예의를 갖춘 언동으로 친모를 밀어냈어요. 볼일이 끝났으면 더 볼 일이 없지 않냐는 메시지를 돌리고 돌려 완곡하게요. 중년에 접어든 저는 왜 아직도 친모가 불편할까요? 제가 느끼는 부정적인 시선과 죄책감은 상대에게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제게서 비롯된 오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니체의 말처럼 타인은 지옥인지 사실은 지옥 아닌 타인에게 지옥 같은 자존감을 스스로 투사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하나는 알 것 같아요. 그토록 많은 독서와 상담과 생각에도 저는 여전히 친모를 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원가족 중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고 이제는 노인이 된 친모를요.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대가를 초래할지, 멍청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제 무의식이 어떤 색깔인지만 알겠어요. 마음 속 깊은 심연에 꽁꽁 봉인되어 있어 전문가에게 시간과 비용을 더 쏟아 부어야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무의식은 일상을 살아가는 제 행위와 언동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 찰나적 순간들을 저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