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친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 들지 않고 피하고 보는 사람들을 주로 회피형이라 일컫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유형을 굉장히 싫어한다. 오죽하면 ‘믿고 거르는 회피형’이라는 말도 나왔을까. 싫어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못 본 척 숨어버리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런 회피형을 비난할 때, 나는 혼자 방구석에서 몰래 뜨끔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회피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회피형임을 인정하기 싫지만 요즘 내 모습을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문제를 회피하는 여러 가지 예는 먼저 가계부 쓰지 않기다. 나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자취 중이기 때문에 절약이 필수다. 그래서 매일 얼마나 돈이 나갔는지 확인을 위해 가계부를 쓴다. 하지만 유독 돈을 많이 쓴 것 같은 날은 통장 잔고 확인이 두렵다. 신나게 돈을 썼지만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를 보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런 날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돈을 많이 쓴 걸 알지만 정확한 수치로 확인했을 때 느낄 절망이 두려워 아예 덮어놓고 보지 않는다. 물론 미래의 내가 결국 통장 잔고를 보게 되겠지만, 그건 미래의 나에게 맡긴다.
연락도 내가 곧잘 회피하는 것 중 하나다. 사람이 싫어서 연락을 피한다고 하기 보다, 정확히 하자면 답장을 회피한다. 나는 답장을 보내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문자는 말보다 오해하기 쉽다고 생각해 ‘어떻게 하면 나의 긍정적인 뉘앙스가 잘 전해질까?’를 매번 고려해서 보낸다. 거기다 맞춤법이 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뒤엉키다 보니 간단한 답장도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채팅이 버겁고, 그걸 회피하기 위해 답장을 회피한다. 그런 나를 답답해 하는 사람들에게 매번 ‘메신저 앱 알람을 아예 꺼버려 실시간 확인이 어려워 그렇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알람을 켜 놔도 내 답장은 실시간으로 갈 일이 없다는 걸.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회피 중 가장 심각한 건 취직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지금 취준생이다. 그것도 타지에 올라와 자취 중인.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월급으로는 공과금과 식비를 감당하기 빠듯하다는 걸 하루하루 몸으로 깨닫고 있다. 하지만 아무 경력도 없는 내 이력서와 장점은 쥐어짜내도 나오지 않는 내 자소서는 보면 볼수록 보기 싫어진다. 그럴 때 고치던 이력서를 접어두고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는 둥 현실을 회피한다. 그런 날이 길어질수록 내 취준 기간도 함께 길어지고 돈이 없는 날도 길어진다. 돈이 없으니 가장 먼저 사람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못 만나는 이유를 돈이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니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하지만 핑계를 대는 내 모습이 스스로에게 가장 없어 보이는 순간 이대로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취업 소식과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얼른 그만두고 싶은 마음,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초라함이 몸을 불려 우울함으로 바뀌는 지금, 나는 내 회피를 끝내려고 한다.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나날이지만 부단히 마주보려고 한다. 걱정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걱정을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내 회피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껏 외면했던 일을 하나씩 해보려 한다. 가장 먼저 이 글을 여기 올리는 일부터. 더 나아질 회피해피한 나를 위해 행운을 빌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