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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Dec 11. 2023

품品의 이해

문자를 읽다.

'품品'이라는 글자가 있다. 현대에는 이 글자를 ‘물품’ ‘상품’처럼 물건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물품物品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용도에 필요하고 쓸모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이 글자는 사람의 등급을 매길 때 사용했다. 가까운 조선에서는 관리의 등급을 정할 때 ‘품계品階’라고 하여 정과 종을 나누어 총 18단계를 두었다. 정1품부터 종9품까지, 형식적으로 드러나는 정전에 서 있는 위치부터 관복의 색과 흉배의 문양은 물론, 권한과 책임, 사회적 지위, 그리고 권력은 차등을 두어 부여되었다. 이러한 품계라는 개념은 과거제도가 도입되었던 중국 수나라 당나라로 거슬러 올라가니 전통이 1500년쯤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이전에는 품이란 단어는 사람의 순위를 매기는 일과는 관련이 없었을까? 아니다. 그전에 중국에는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 또는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라는 제도가 있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약 3세기에서 6세기 이르는 시기에 역시 관리의 등용을 위해 사용되었던 제도이다.  그때는 시험이 아니라 지역에서 덕행, 학문 등에 뛰어난 인물을 천거하여 관직을 주는 제도로 시작되었다. ‘중정관’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가문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하게 뽑아 나라를 위해 일할 인재를 선발을 쓰겠다는 것이 애초에 취지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유력자의 자식들이 천거되고 지방 호족들이 관직을 얻는 방법으로 전락하였다.


그럼 품은 애초에 어디에서 왔을까? 중국 한나라의 학자 허신은  <설문해자>에 품자를 세 개의 입 ‘구口’가 모인 글자라고 해석해서 사람의 모인 무리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고, 현대 한문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는 입구처럼 보이는 이 글자는 사실은 기도문을 넣어둔 축문 그릇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시라카와 교수의 해석을 따르자면 품자는 염원이 담긴 그릇이 여러 개 모여있는 형상이 된다.    


그럼 지금에서는 품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나는 때때로 SNS에서 품을 본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품이며, 그 수많은 사람들이 더 성공하고 더 예뻐지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큰 영향력을 얻고자 열망하기에 품이 된다. 또한 좋아요와 팔로워 수를 가지고 등급을 매기니 품이다. 서로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며 스스로 열망하는 샐럽을 따라 하고자 비현실적인 자아를 만들어내니 품이다. 왜곡된 필터와 과장된 앵글에서 의도된 일부만으로 삶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기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물건처럼 대하니 품이다.


‘품’은 글자이며 언어이다. 그 품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다. 이제 더 이상 품이 신분을 의미하는 세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금이라면 이 품자에 좀 더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등급을 매기는 데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21세기의 품의 활용법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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