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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Dec 22. 2023

눈雪의 이해

문자를 읽다.

벌써 여러 날 눈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 내리는 눈은 금방 탁하게 오염되어 원래의 색을 잃어버리지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눈은 새하얀 색으로 사물의 덮어 사위四圍의 혼란이 일시에 고요해지고, 질서 정연한 듯한 평화가 도래하게 한다. 고요와 평화는 아침 햇살이 밤 사이에 내린 눈들에 쏟아질 때 더욱 또렷해진다.


눈을 의미하는 한자 ‘설雪’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자(상용자해)이다.  ‘설’ 자는 ‘눈’이라는 뜻 외에도 ‘눈이 내리다’라고 동사로 사용되기도 하며 눈의 속성인 흰색에서 희다, 깨끗하다는 뜻도 더해졌다. 그리고,  ‘雪’ 자에는 ‘씻어내다’라는 의미도 있다. ‘없애다’, ‘쓸다’라는 라는 ‘쇄刷’라는 글자와 발음이 비슷하고,  ‘설’ 자에 이미 깨끗하다는 의미도 있어 옛날부터 혼용되어 사용되다가 어느샌가 굳어진 듯하다.  


그래서 ‘설’ 자의 씻어내다는 의미에서 ‘설욕雪辱’, ‘치욕을 씻어 없애다’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리고, ‘설’ 자는 ‘풍설風雪’이나 ‘한설寒雪’ 같이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의미하기도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고난이라는 의미도 아울러 가지게 되었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걸어서는 안 된다.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가는 흔적이

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이 시는 김구 선생이 생전에 자주 쓰고 암송했던 시다. 상상해 본다. 눈앞에 펼쳐진 시리고 차가운 눈 덮인 들판 위로 최초의 한 걸음을 내딛는 선생에게 눈은 어떤 의미였을 것인지….


어떤 이에게는 눈은 고요와 평화이며, 어떤 이에게는 오욕을 씻어내 주는 깨끗하고 순결한 존재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감당해야 하는 지난한 고난 그 자체 일수도 있다. 지금 어떤 눈으로 눈雪을 바라보는 가는 어쩌면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금세 녹아버리고 마는 단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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