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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 산 Dec 08. 2023

인생의 문장_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Everybody Has a Plan Until….

한때 복싱계 압도했던 핵주먹 마이클 타이슨이 했다는 말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는 “Everybody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 이란 말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누가 맨 처음 옮겼는지는 몰라도 기세와 맛을 기가 막히게 살린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사각의 링 위에서 전의를 불태우며 달려드는 도전자의 서툰 용기를 보며 충분히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정확히 급소를 맞춰 다운시켜 버리는 타이슨은 자신이 링 위에서는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링 밖에 사람들은 그런 타이슨에게 열광하며 그 압도적인 힘과 의문을 제기할 필요 없이 결말에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강력한 확신과 질서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승자의 편에 서려고 한다. 누군들 링 바닥에 누워 흐릿한 시선으로 쏟아지는 조명을 정면으로 받고 싶을까? 하지만 그 타이슨도 한때였다. 그도 결국은 패자가 되었다. 그의 강함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그럼 사람들은 또 다른 강자를 찾아 헤매고 또다시 열광한다.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맞는 쪽에 서게 된다. 강자는 하나고 약자는 다수다. 만약 세상을 약육강식의 세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이 질서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처맞을까 두려워 쉽게 잊는다. 강함도 약함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것들은 서로 엎치락뒤치락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것이다.


계획은 있었으나 처맞는 쪽에 있었던 적이 많았다. 처음엔 계획도 없이 처맞고 쓰러졌고, 그다음에 계획 비스무레 한 것이 있었지만 역시 처맞고 쓰러졌다. 자꾸만 맞고 쓰러지다 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나의 진짜 장점과 단점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처맞지 않을 수 있는 계획이고 싶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덜 맞거나, 맞아도 대미지를 최대한 줄이는 계획을 세우고, 그다음엔 반격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인생은 스냅사진처럼 순간만이 박제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이고 다큐이다. 단어 하나가 아니며 문장이고, 찰나가 아니라 찰나가 겹겹이 쌓인 영원이다.

 

타이슨처럼 압도적인 피지컬과 파워를 가지지 못했다 해도  알리처럼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복싱도 있다. 적을 상정하고 싸우고 이기는데 매몰되다 보면 지는 것에 대해 공포감이 생기고,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처맞는 입장이 되어 일어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진짜 두려운 순간은 그때가 아닐까? 처맞고 쓰러져 진짜 끝이구나. 여기가 마지막이 구나하는 생각이 엄습하는 순간 말이다.


강자를 보며 열광하는 짧은 순간은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압도적인 힘에 부딪혀 쓰러진 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나 걸어서 링밖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의 삶이 링 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나 걷는 것, 이번 판은 승자를 뒤로하고 패자로 내려오지만, 다시 링 위에 오를 준비를 하는 것, 좀 더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자 마음 먹는 것은 우린 이미 강자도 약자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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