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정(648? - 703?), <서보>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

by 검은 산

당나라에는 그 어느 시대보다 서예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글들이 많이 지어졌다. 서예를 너무도 사랑했던 황제 덕분일 수도 있고, 전쟁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예술을 논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보書譜>(687)의 저자, 손과정孫過庭도 그런 서예가이자 이론가 중에 한 명이다. 손과정은 초당기의 인물이라고 추정할 뿐, 생몰연도 정확하지 않으며, 이름조차도 불명확하다(그의 자字인 건례虔禮가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가 40대쯤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현존하는 <서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남아있는 글은 ‘서문’ 격으로 전체의 일부분일 뿐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둘 중에 무엇이 맞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남아있는 글을 통해 우리는 손과정이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서보>에는 크게 두 가지 주제가 담겨 있는데, 하나는 왕희지를 가장 훌륭한 서예가로 올려놓고자 하는 손과정의 의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를 공부함에 있어 가져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한 그의 관점이다.


이러한 <서보>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왕희지를 높이고, 그 아들 왕헌지(王獻之, 344 - 386)를 한사코 낮추는 시선이다. 왕희지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글씨를 잘 썼으나, 막내아들인 왕헌지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났고, 왕헌지가 살았던 시대에는 오히려 아버지보다 평가가 높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 왕희지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당나라 시대에 들어오면 왕희지의 지위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이 된다. 지금은 ‘이왕二王’이라고 해서 왕희지의 재능을 가장 훌륭하게 이어받은 사람으로 왕헌지를 인정하고 두 사람을 아울러 높이지만, <서보>에서 왕헌지는 아버지 왕희지를 질투하고 넘어서려는 모습이 박제되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친구 사안이 '너(왕헌지)와 아버지(왕희지) 중에 누가 더 서예를 잘 쓰는가?' 하고 물으니, 왕헌지가 '당연히 제가 더 낫습니다.'라고 답했고, 사안이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다시 말하니,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손과정은 이 일화를 적어놓고, 자기(왕헌지) 입으로 아버지(왕희지)를 넘어섰다 말한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고 비판을 덧붙여 놓았다. 이런 일화들은 그때까지 전해오던 것을 기록한 것으로, 후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다분히 왜곡된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손과정의 시대만 해도 이런 이야기들이 마치 정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보>의 ‘보譜‘는 족보라는 의미가 있다. 족보는 한 집안의 혈통이 이어져나가는 과정을 기록하면서, 나의 근본根本을 밝히고, 그 외의 것들과 구분 짓는 경계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정통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져 나가는 가를 선언하고, 올바르게 서예를 배우는 방향을 아울러 제시하려고 한 손과정의 의도를 생각했을 때, 본받아야 할 사현四賢 가운데에 왕헌지를 꼽았음에도, 우열로 서열을 정하려 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소 세련되지 못한 듯한 이런 서술들은 <서보>에 기록된, 서예에 대한 손과정의 진심을 읽어내면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는다.


'나는 열다섯 살부터 서예에 관한 일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부족할지라도 서예를 향한 올곧은 마음만은 흔들린 적이 없다.' 또 '앞사람들의 글씨를 두루 연구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연마하는 것이 서예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자, 자세이다.' 그리고 <서보>의 가장 비범한 부분은 가장 마지막 문장, '자기가 아는 바를 비결로 감추어 두는 것을 나는 옳다 여기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손과정의 <서보>에는 필살기 같은 것은 없다. 좋은 선생을 알아보고, 열심히 배우고 익혀, 얻은 것이 있으면, 뒤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나누어 준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전부이다. 진리는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나 단순하다. 우리는 그의 이름도 정확히 모르지만, 그가 남긴 기록이 온전한지도 알 수 없지만, 그의 뜻은 이렇게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손과정 혹은 손건례가 직접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면서 바랬던 유일한 것이었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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